"아버지 애국심 보며 군인 택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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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현창건 예비역 대령(左)이 아들 현승기 소령이 모는 F-5E 전투기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현역 공군 조종사로 활약하고 있어 화제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현창건(80.예비역 대령)옹과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소속의 현승기(36.공사 42기) 소령이 그 주인공이다. 부자 빨간마후라는 가끔씩 있었지만, 한국전쟁 참전 빨간마후라의 아들이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경우는 현 소령이 처음이다.

현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5월 공군 소위로 임관, 강원도 강릉 제10 전투비행전대에 소속돼 F-51 무스탕 전투기를 몰고 114차례나 출격했다. 그는 임관한 지 석달 만인 8월 29일 '평양 대폭격작전' 3차 공습에 참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는 겨우 이착륙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달 남짓 비행교육만 받고 곧바로 전장에 투입됐다. 현옹을 포함해 35대의 F-51로 구성된 공습팀은 평양 시내의 공장 건물 9개 동을 모두 파괴하고 10개 동에 큰 피해를 입혔다. 현옹은 휴전 직전인 53년 3월 26일 북한의 수중에 들어갈 위기에 있었던 강원도 고성 남쪽 7.5㎞ 지점의 351고지에 대한 항공지원 작전에도 참가했다. 이 작전이 성공해 351고지에서 적은 격퇴됐고, 이 지역은 남한 영토가 됐다.

현옹은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전투 중 누출된 기름이 조종석 덮개유리(canopy)를 완전히 뒤덮는 바람에 한 손으로는 조종간을 잡고 한 손으로는 기름을 닦으며 활주로에 안착하기도 했단다. 평양 폭격작전 중에는 북한군이 쏜 고사포에 프로펠러 하나가 부러져 추락 위험 속에 아슬아슬하게 착륙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전과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현옹의 3남인 현 소령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조종사복을 입은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빨간 마후라의 꿈을 키웠다. 현 소령은 고등학교 2년 때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어머니가 반대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죽음을 넘나드는 사지로 내보낼 수는 없다는 강한 모정이었다.

하지만 현 소령은 아버지의 강력한 지원으로 결국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F-4E 팬텀을 주기종으로 1700여 시간의 비행기록을 가진 베테랑이다. 현재는 T-50 고등훈련기 교관으로 일한다.

현 소령은 "한국전쟁 당시 보여준 아버지의 용기와 애국심은 군인인 내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면서 "가능하면 내 아들까지 전투기조종사가 돼 3대가 군인으로 국가에 충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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