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제비는 알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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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퍼부어 댔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들락거리며 교대로 먹이를 잡아들이던 아비, 어미 제비였지만 세찬 빗줄기엔 어쩔 수 없는지 처마 끝 새끼줄에 근심스럽게 앉아 비가 그치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어느 날 점심 밥상을 치운 얼마 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마루에 떨어졌다. 난 즉시 헛간에서 장작을 패는 아버지에게 알렸다. "아버지, 제비가 떨어졌어요. 올려놔주세요."

아버진 태연하게 일만 계속하셨다. "한번 떨어진 놈은 끝이다. 한쪽에 치워둬라."

난 야속했다. 올려주기 귀찮아서 모른 척하는 인정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

"그러다가 놀부처럼 죄받으면 안 되잖아요."

"제비도 그럴 사정이 있다. 저절로 다 알게 돼."

불쌍해서 파리를 잡아 강제로 입 벌려 넣어주었지만 제비는 눈을 감은 채 비실거렸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죽어 있었다. 이튿날 또 한 놈이 떨어지고, 다음날 세 번째도 떨어졌다. 그제야 장마가 그치면서 남은 두 마리는 부모를 따라 날아갔다.

"봤지? 제비는 장마 통에 새끼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그중 약한 놈부터 버리는 거란다. 어차피 강남까지 가자면 튼튼한 놈이라야 살아남으니 별수가 없어."

그날 밤. 장마 끝났거니, 안심하며 한참 잠든 와중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제방이 끊어졌고 우리는 그만 집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식구들은 무사히 피했지만 이불과 그릇 몇 개 말고는 모두 떠내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이 빠져나간 새벽, 집터 주춧돌이던 바위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제비란 참 영물이다. 집이 물에 잠길 걸 미리 알고 튼튼한 놈이라도 살리려고 그렇게 서두르며 새끼를 키웠던 건데 그런 징조를 몰라 대비를 안 했으니. 어제도 우리더러 빨리 피하라고 온종일 들락거리면서 시끄러웠을 게야. 그나마 사람이 무사한 걸 천운으로 알아야지."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튼튼한 제방 하나씩 쌓고 대비할 일이다. 진상용(54.회사원.인천시 삼산동)

*** 30일자 소재는 '월드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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