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탈당 선언 바로 곁엔 홍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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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손혜원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탈당 회견에서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홍영표 원내대표였다. 홍 원내대표는 “손 의원이 민주당 당적을 내려놓기로 했다”며 “당으로선 만류를 많이 해왔지만 손 의원이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 오히려 당적을 내려놓고 의혹을 명확하게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이어 손 의원은 단상으로 와 장시간 회견을 이어나갔다.

원내대표, 탈당 회견 참석 이례적 #당내 “지도부 들러리 서나” 목소리 #민주당 측 “손 의원이 강하게 요구” #야당 “여당 주저, 징계 타이밍 놓쳐”

개인 의혹 논란에 휩싸인 현직 의원의 탈당 회견에 당 원내대표가 동행하고 배경까지 설명하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장면이다. 손 의원은 “이해찬 대표와 홍 원내대표의 며칠에 걸친 간곡한 만류가 있었지만, 더 이상 온 국민을 의미없는 소모전으로 몰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당 지도부에서 탈당을 아주 심하게 만류했다. 할 수 있다면 저와 함께 광야에 나가겠다는 분도 있었다”며 “그러나 제가 당에 있어선 이 일을 해결 못한다고 생각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당 핵심관계자는 “손 의원이 홍 원내대표에게 회견에 동행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안다. 그래야 자신의 결백이 더 강조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굳이 홍 원내대표가 동행한 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 관계자는 “손 의원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인데 당 지도부가 들러리를 서는 것처럼 보이는 건 모양이 안 좋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손 의원의 탈당을 적극 만류해 왔다는 점도 드러났다. 지난 17일 열린 비공개 긴급 최고위와 관련해 손 의원은 “이 대표에게 ‘제가 당을 나가는 게 맞지 않겠냐’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손 의원은 결백하다’는 당의 발표가 나왔을 때 조용해질 줄 알았지만 다른 언론까지 나서서 더 확대되는 걸 보고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결국 당 지도부가 여론을 못 읽다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 당 지도부는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투기 목적은 없었다는 손 의원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발표했지만, 3일 만에 손 의원이 탈당하는 바람에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력이 도마에 오른 셈이 됐다.

한 초선 의원은 “지난 17일 최고위 회의에서 지도부가 선제적으로 손 의원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간사직 사임 정도의 조치는 취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손 의원에게 너무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손 의원의 결백을 믿기 때문에 당 지도부 입장에선 탈당을 만류할 수밖에 없고, 회견에 동행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 관계자는 “손 의원이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가까운 사이라는 점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가 징계를 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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