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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장해 보험금 10억 받고 차량 운전...금감원이 적발한 ‘황당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크레인 현장 관리자인 A(43)씨는 작업 중 크레인 적재함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에는 7개 보험사에서 장해 보험금 10억1000만원을 받았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척추 손상과 허리뼈 1번 골절로 중추신경계 또는 정신에 뚜렷한 장해를 남겨 ‘항상간호’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항상간호는 다른 사람의 수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경우로 ‘수시간호’보다 장해가 심하다는 뜻이다.

A씨는장해진단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차량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다 4번의 교통사고로 보험금 1900만원을 챙겼다.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은 A씨를 보험사기 혐의자 명단에 올리고 조사를 벌였다. 차량을 운전할 수 없는 상태로 장해 진단을 받은 뒤 운전대를 잡은 것이 수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 A씨에게 보험사기 혐의가 뚜렷하다고 보고 조만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A씨 외에도 허위ㆍ과다 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부당한 보험금을 챙긴 것으로 의심되는 보험사기 혐의자 18명을 적발했다고 16일 밝혔다. 고도장해 보험금을 받은 뒤 직접 운전하던 중 차량사고가 발생한 보험사기 의심자를 대상으로 금감원이 기획조사에 착수한 결과다.

이들 중 정신지체 판정을 받고 보험금 2억8000만원을 받은 B씨와사지마비 판정으로 보험금 3억9000만원을 받은 C씨는 이미 보험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보험사기 혐의자 18명이 챙긴 보험금은 모두 합쳐 57억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으로는 3.4건의 보험 계약을 맺고 3억1000만원의 보험금을 챙긴 셈이다.

이들 중 40대 여성 1명을 제외한 17명은 남성이었다. 특히 40~50대 남성(12명)의 비중이 컸다. 해당 연령대 남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 사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금감원은 분석했다.

장해 종류에선 마비(6명)와 척추장해(5명)이 가장 많았다. 마비나 척추장해의 보험금 지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과 장해 평가시점, 의학적 소견 등에 따라 장해정도가 달라지는 점을 노린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정관성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 팀장은 “허위ㆍ과다 장해 보험사기는 의사와 사기 혐의자가 사전에 공모하거나 중간에 브로커가 개입된 경우가 있다”며 “보험회사를 속여 보험금을 청구할 때 손해사정 과정에서 보험사기 여부를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기획조사의 배경을 소개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에 따르면 보험사기가 적발되면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정 팀장은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다른 보험 소비자의 피해를 유발한다”며 “보험사기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금감원이나 각 보험사 신고센터에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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