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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 힘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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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주 필자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중소기업 공단인 남동공단을 방문하여 그곳을 대표하는 기업인들과 토의하게 되었다. 현재 약 300만 개의 중소기업은 1000만 명 이상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의 발전이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경기침체로 이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매우 취약한 형편이며, 특히 남동공단의 경우 중국의 추격과 생산비의 지속적 인상으로 인하여 많은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필자는 이들 기업인이 정부의 경기 활성화 조치 및 정책금융의 확장과 같은 정책들을 요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어본 이들의 요구사항은 그러한 단기적인 지원정책이 아니었다. 사실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다양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점과 애로점의 일부는 중소기업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었다. 예를 들어 브랜드 이미지의 제고, 연구개발비 확충을 통한 기술개발, 그리고 금융권의 신용을 쌓는 일 등은 정부와 대기업이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사안들이었다. 또한 일부는 기존의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었다. 특히 KOTRA를 통한 해외마케팅 활동의 효과적인 제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철저한 세관조사, 그리고 수출보험공사의 환보험 활용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이 지적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보다 구조적인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임금이라도 좋으니 필요한 인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력 수급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해 주었던 것이 바로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의 공급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최근 도입된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그 장점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한 근로조건을 적용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과 시간외수당, 그리고 퇴직금 등을 내국인과 동일하게 지급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인건비 상승을 통한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소통 능력과 숙련도 등에서 엄연히 내국인 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낮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내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하라고 하는 것은 인권과 노동권 신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인력 수급의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중소기업인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중국의 추격이었다. 대기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기술과 자본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경우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거칠게 추격해 오는 중국 기업들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더 이상 늦기 전에 추가적인 신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많은 기업인은 이러한 투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와 정부의 각종 개혁정책으로 인한 불투명한 경기상황, 그리고 고용허가제와 같은 경쟁력 감퇴 조치 등은 이들의 투자 의지를 크게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은 많은 중소기업인이 생산현장을 떠나거나 중국 등의 개도국으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고용 없는 성장을 야기하고 또한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의 필요성과 단기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전에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실용주의적인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