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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교육'이 명문을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강남구 은광여고 김정렬(63)교장의 집무 책상에는 전교생의 사진은 물론 메모장이 있는 앨범이 놓여 있다. 이를 통해 김 교장은 전교생 대부분의 이름은 물론 신상 명세까지 훤희 꿰고 있다. 김 교장은 "교장이 학생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교사와 학생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있는 것 아니냐"며 "학생들이 예의바르고 성실해 내 아이처럼 귀엽다"며 환하게 웃었다.

올해 개교 60년을 맞는 은광여고가 한때 '학생들이 입학을 꺼리는 학교'로 전락하기도 했던 침체기에서 벗어나 명문으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16년간 관선이사 체제에 있던 이 학교를 2002년 학교법인 국암학원(이사장 김승제)이 인수하면서 적극적인 재정 지원에 나선데다 '국제적인 감각을 익힌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학교측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 대학입시에서 법대 2명을 포함해 13명을 서울대에 입학시켜 전국 여자고교중 대구 경일여고와 함께 1위를 차지했다. 또 교사(校舍) 외벽 리모델링과 책걸상 교체.화장실 개보수 등 학교를 새롭게 단장했다. 교직원을 대상으로 선진국 견학을 실시하는 등 교직원 복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김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실력과 인성'이라는 2가지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명이던 영어 원어민 교사를 3명으로 늘려 타 학교에 비해 매주 1시간씩 영어 수업을 확대했다. 3개 교실로 돼 있는 자율학습실(총157석 규모)도 사설 독서실을 능가할 정도로 잘 갖추었다. 매일 오후 6~10시까지 개방되는 자율학습실은 3학년에게만 개방되지만 신청자가 400여명에 이르러 성적순으로 배정을 할 정도다. 수준별 이동수업도 단순히 분반 형태의 수업 진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도 수준별로 제출해 성적에 반영하고 있다. 방과후 학교도 학생들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과 담당 교사를 선택하도록 하는 등 수요자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측은 영어.과학 과목의 모든 수업장면을 캠코더로 촬영한 후 학교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려 동료 교사들이 공유할 수있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인센티브제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연말 1년간의 교육 활동을 다면 평가해 우수교사(Best Teacher) 4명을 선발,포상과 함께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독서교육 내실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전 과목에 대해 추천도서를 학생들에게 제시,독후감을 쓰게 해 수행능력 평가에도 반영하고 시험 문제도 추천도서에서 출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학생 150여명과 교사 10여명이 밤샘 책읽기 행사도 열었다.

국제적 인재 양성을 추구하는 김 교장의 방침에 따라 미국 호프웰 고교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상대 학교를 견학하는 형식적인 상호 교류에서 벗어나 홈 스테이를 하고 수업에도 직접 참여해 현지의 생활풍습을 익히는 등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사제동행이라는 이색 체벌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학칙을 7회 위반한 학생은 주말에 교사와 함께 청계산 8㎞구간을 등산한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끈뒤 책가방에 넣어두지 않을 경우 압수해 한달후에 돌려준다. 대신 학교측은 교사들의 체벌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해줘야만 스승을 믿고 따른다"며 "재단과 학교측은 21세기 인재 양성을 위한 변화와 혁신을 계속 진행중이며 학생들도 수학 능력이 뛰어나 명문여고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갈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은광여고
= 1946년 고(故) 이강목 목사가 학교법인 은광학원을 설립, 남녀 공학의 은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73년 은광여고로 교명을 변경했다. 80년대초 서울대에 30여명, 이화여대에 150여명을 입학시킬 정도로 명문여고였다, 그러나 86년 법인이 부도나면서 16년간 관선체제를 이어가다 2002년 국암학원이 인수했다. 60년대에 출생한 졸업생에서 각계의 여성 엘리트가 많이 배출됐다. 지영난 서울지법 판사 등 법조계에만 25여명이 진출했으며 의료계에서도 박춘원산부인과 원장 등 30여명이 활동중이다. 가수 문희옥과 백지영.이진, 탤랜트 송혜교와 한혜진이 이 학교 출신이다. 현재 45학급 1495명이 재학중이며, 3만86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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