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가 성석제, 독학으로 바둑 5단 "바둑소설은 쓰지 않을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는 소설가 성석제가 1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는 소설가 성석제가 1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입담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소설가 성석제(59)는 바둑 고수로도 유명하다. 기력은 아마추어 5단. 쉼 없이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틈틈이 바둑 두기를 즐긴다.

10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만난 성석제는 "한국기원이 관철동에 있던 시절에는 자주 왔던 거 같은데, 마장로 한국기원은 생소하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 한국바둑 국가대표팀 훈련실에서 선수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그는 "TV로만 보던 유명 선수들이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다"며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린 시절 성석제에게 바둑은 놀이와 다름없었다. 달력 뒤에 바둑판을 그리고, 냇가에서 돌을 주워 바둑알을 삼아 바둑을 뒀다. 제대로 룰을 알고 진지하게 뒀다기보다는 장난과도 같은 놀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형이 접이식 바둑판을 사오면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관련기사

특히 바둑광인 외갓집은 성석제에게 바둑 공부를 위한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외가에는 『월간바둑』 수백 권이 서가에 꽂혀 있었다. 월간바둑 연재소설 '방랑기객'을 빼놓지 않고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책 속의 관전기를 읽으며 성석제는 서서히 바둑에 중독됐다.

바둑과의 인연은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됐다. 1987년 성석제는 동양그룹에 입사했는데, 당시 회장이 한국기원 이사장이 됐다. 회사에 바둑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터라, 관철동 한국기원을 들락날락하며 회사 측을 대표해 한국기원 사정을 살폈다. 그러면서 바둑계 사람들과 자연스레 친분을 쌓게 됐다.

성석제는 "바둑을 너무 좋아해서 바둑 관련 소설을 쓴다면 편파적으로 될까 두렵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성석제는 "바둑을 너무 좋아해서 바둑 관련 소설을 쓴다면 편파적으로 될까 두렵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소설 쓰기와 바둑 두기 중 어느 것이 더 재밌냐고 묻자 성석제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둑"이라고 답했다. 그는 "바둑은 여러 수읽기 끝에 최선의 수를 찾는 과정이다. 이러한 연역적인 수읽기 과정이 인간의 두뇌 작용에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게다가 승패 같은 보상체계도 있기 때문에 사람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바둑은 재밌는 대신 원고료가 없는 단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문단 최고수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성석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석제는 "만들어진 말 같다. 서로 바둑을 둬보지도 않았는데, 누가 최고수인지 어떻게 알겠나. 문단이란 데가 입김이 세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기풍을 묻자 바둑이 너무 저돌적이라서 '돌 바둑'으로 불린다고 했다. 성석제는 "정석에도 없는 이상한 수를 무식하게 두어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성석제가 좋아하는 프로기사는 조훈현 9단. 제자 이창호 9단에게 왕좌를 물려준 그의 일화는 그에게 엄청난 감명을 줬다. 요즘엔 최정 9단과 오유진 6단 같은 여자 기사들의 바둑에 푹 빠져있다. "바둑이 화끈하고 직선적이라 관전의 묘미가 있다"며 "오늘 한국기원에서 실물로 보고 나니 더욱 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알파고' 등 인공지능(AI) 출현 이후의 바둑에 관해 묻자 "2016년 알파고 대결 당시는 이세돌 9단이 패배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바둑이 무너졌다는 식의 아쉬움은 없었다"며 "AI 역시 인류의 문화, 문명 등 인간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AI 역시 인간의 힘이고 바둑 역시 인간의 힘"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바둑과 관련한 소설을 써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바둑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편파적인 내용이 될 것 같아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며 "바둑은 이따금 내가 둘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강호에는 호랑이와 사자가 많은데 나는 족제비나 여우 정도라 상대할 대상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관련기사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