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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아홉은 ‘공갈포’ 국정조사 공방…'식은 파이'된 채용비리 국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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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정규직 채용 비리를 규탄했다. 서울시가 출입문을 통제하면서 의원과 직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오종택 기자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정규직 채용 비리를 규탄했다. 서울시가 출입문을 통제하면서 의원과 직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오종택 기자

“언제까지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를 덮기 위해 국회를 마냥 공회전시킬 것이냐.”(자유한국당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계속 의혹이 나온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지난해 11월 국회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 문제로 뜨거웠다. 특히 여야 모두 국정조사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중앙일보 보도와 국정감사를 통해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야의 공방은 절정에 달했다.

야당이 서울교통공사 국정조사를 요구하자 민주당은 한국당 의원들이 연루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도 국정조사로 다루자고 맞불을 놨다. 결국 여야 원내대표는 서울교통공사뿐 아니라 강원랜드도 대상으로 하는 채용 비리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데 합의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3번째)과 여야 5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21일 채용비리 의혹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했다.[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3번째)과 여야 5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21일 채용비리 의혹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했다.[연합뉴스]

두 달 만에 쏙 들어간 채용 비리 국정조사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여야가 국정조사를 대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 7일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의 요구 사항 목록에 ‘유치원 3법’ ‘김태우 특검’ 등은 올라있었지만 ‘국정조사 실시’는 없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회동 뒤 전화 통화에서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국정조사 해야죠’라고 내가 말하니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가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인 것은 표면적으로는 유치원 3법 때문이다. 국정조사위원장인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야당이) 국정조사는 하자고 하면서 유치원법은 안 하려고 하니까 합의가 깨진 것 아닌가. 둘 다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열린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가 산회한 후 이찬열 위원장(오른쪽)과 바른미래당 임재훈 간사가 악수하고 있다. 교육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무기명 투표를 통해 재적의원 14명 중 더불어민주당 7명과 바른미래당 2명의 찬성으로 '유치원 3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열린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가 산회한 후 이찬열 위원장(오른쪽)과 바른미래당 임재훈 간사가 악수하고 있다. 교육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무기명 투표를 통해 재적의원 14명 중 더불어민주당 7명과 바른미래당 2명의 찬성으로 '유치원 3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

여야는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하면서, 유치원 3법 처리 등 5개 항에도 함께 합의했다. 민주당은 이 때문에 유치원 3법이 국정조사 실시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이다. 유치원 3법은 지난달 야당의 거부로 결국 처리에 실패해 패스트트랙(fast trackㆍ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됐다.

반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합의할 때 유치원법이 전제조건이라고 한 적이 없다. 각각 별개의 문제고 국정조사는 국정조사대로, 유치원법은 그것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여당이 유치원법을 핑계로 국정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야 모두 꼼수를 쓰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정조사를 하면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강원랜드의 경우 한국당 권선동ㆍ염동열 의원이, 서울교통공사의 경우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관돼 있다. 여야 모두에게 흠집이 생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20대 국회 11건 요구에 2건 의결 

게다가 한국당은 먼저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지만 김성태 의원 딸의 KT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져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국정조사를 한다고 해도 ‘한물 간’ 이슈에 발 벗고 나설 의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사건 등 새로운 이슈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떠들썩한 시작과 달리 실제론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아 국정조사 요구는 ‘공갈포’로 인식되기도 한다. 비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5선 의원인 민주평화당의 천정배 의원은 “실제 필요해서라기보다 야당이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처음에는 국정조사를 두고 여야가 때려잡을 듯이 싸우다가 언론이 비리를 이미 밝혀내고 국민의 관심도 식으면 ‘식은 파이’가 된다. 실제론 국정조사 카드를 가지고 정치적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11건의 국정조사 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됐지만, 실제 본회의에서 의결된 건 ‘최순실 국정농단’과 ‘가습기 살균제 사고’ 단 두 건뿐이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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