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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일본보다 더 좋은 나라 만들겠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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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29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한 손에는 국화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을 가리킨다. 한쪽에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이러한 일본 문화론이 나온 것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44년 무렵 미국 국무부에 의해서다. 일종의 전쟁 보고서로 만들어졌다가 나중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나와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전쟁은 승리를 목표로 한다. 전쟁 중인 적에 대한 분석은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로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이중성 상징 #일제가 만든 ‘인조 국화’ 동양평화론 #동양평화 뒤 ‘예리한 일본도’ 정한론 #국화와 칼, 한쪽만 보는 오류 반복 #중국 패권 동북공정도 함께 비판해야 #역사왜곡 고쳐가며 포지티브 경쟁도

미국인의 눈으로 전범국 일본을 분석한 이 상징어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이 새해에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안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어떤 이는 국화만 주로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칼 얘기를 주로 한다. 어느 것이 일본의 진짜 모습인가.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 과거사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일본의 이중성에 대한 편가르기가 반복된다. 해방 이후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일희일비하지 말고 좀 호흡이 길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0년 전 3·1운동이 일어날 때도 그랬고, 122년 전 대한제국 창건(1897년) 시기에도 그랬고, 1884년 갑신정변과 1876년 강화도조약 때도 그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직전 일본 정세를 살피러 간 조선의 사신 두 명의 시각에서도 국화와 칼이 발견된다.

국화와 칼은 늘 같이 움직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도 국화의 향기에 취한 이들이 많았다. 친일 개화파들이다. 그때 일제가 개발한 ‘인조 국화’가 동양평화론이었다. 그 향이 어찌나 독한지 항일 투쟁의 영웅 안중근조차 잠시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침략전쟁이 동양평화론으로 포장돼 있었지만, 서양에 맞서 한·중·일 삼국이 손잡고 공동 번영을 이뤄내자는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평화론 뒤에는 정한론이란 예리한 일본도가 놓여 있었다. 정한론, 한국을 정벌한다는 뜻이다. 한국 정벌이 일본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얘기다. 정한론은 이미 강화도조약 당시에 마련돼 있었다. 일제는 한국을 침략하며 ‘보호’라는 엉뚱한 미명을 내세웠다.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것인가. 중국과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운 것인데 그 실상을 알고 보면 보호하려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 자국이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본의 이중성 가운데 가장 극악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우리 역사의 기록에 칼을 댄 것이다.  우리 역사책 속에 숨어 있는 국화와 칼의 코드를 분해해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국화와 칼에 대한 단선적 대응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계속 내부분열 양상을 보이는 배경에는 잘못된 역사교육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명성황후를 시해하러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 가운데 일본 외무성 기관지 한성신보 기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시각으로 시해사건이 기록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저명한 역사가가 되어 근대적 방식의 ‘조선사’를 서술하는 데 가담하기도 했다.

잘못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는 것은 지난 100년 동안 벌써 해야 할 일이었는데 제대로 못 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이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안중근 의거에 이어 3·1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등을 거쳐 카이로선언을 통해 대한의 독립을 세계에 공표하기까지 우리 민족은 치열하게 투쟁했다. 해방 이후에는 70여년 만에 세계에 유례없는 산업화와 민주화도 이뤄냈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지난 9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20위를 기록했다. 예년보다 좀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다.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다. 일본이 우리 뒤를 이은 21위다. 미국(25위)과 프랑스(29위)보다 우리가 높다. 중국은 130위, 북한은 조사 대상국 중 꼴찌인 167위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동양평화론과 정한론, 국화와 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제 두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국화와 칼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과거 100년 전과 달리 오늘의 국제정세는 중국의 패권전략도 큰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도 비판하는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순국선열들 앞에 이런 다짐을 해봤으면 좋겠다. 일본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역사왜곡을 바로잡아 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100년을 향해 일본과 포지티브 경쟁을 하는 것이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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