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모 쓰고 검은색 롱코트…김일성 스타일 훔친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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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평양에서 중국행 열차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일성 주석이 1953년 11월 열차를 이용해 중국 베이징 역에 도착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저우언라이(주은래) 중국 외교부장. [북한 기록영화 캡처]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 닮은꼴’을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평양역을 출발하며 중절모에 검은색 코트 차림으로 도열한 당 간부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 매체가 공개했던 이 사진을 놓고 일제히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키는 차림”이라고 지적했다.
1953년 11월 김일성 주석이 베이징을 찾을 때도 이 차림이었다. 당시 베이징에 도착했던 김일성 주석은 검은색 코트와 중절모를 쓰고 열차에서 내렸다. 김 주석과 함께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상대는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공산당 외교부장이다. 53년이나 2019년이나 모두 기차 방북, 중절모 방북이라는 점에서 같다.

중절모에 검은색 코트는 원래 김일성 주석이 즐기던 복장이다. 과거 북한 사진 자료들로 보면 김일성 주석은 젊은 시절부터 겨울철엔 중절모와 검은색 코트를 입은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 김 위원장의 중국을 찾으며 동일한 중절모 차림으로 나섰다. 이를 놓고 사실상 중국 지도부를 향해 선대부터 이어진 이른바 ‘조중 혈맹’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메시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50년대 김일성 주석의 방북을 연상케 하는 김 위원장의 ‘닮은꼴’ 방북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를 이은 북·중 친선을 강조하고, 동시에 중국 지도부에게 마오쩌둥 (毛澤東), 저우언라이,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부터 이어졌던 양국 관계를 잘 알고 있다고 알리는 게 된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주민들을 상대로 김일성 주석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 왔다. 전영선 건국대 연구교수는 “북한 매체가 공개하는 사진을 보면 풍채나 행동의 패턴이 김일성과 빼닮은 모습으로 나온다”며 “북한 내에선 김일성 주석을 ‘시조’라고 지칭하며 신격화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해 왔는데 김 위원장이 김 주석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단 김 위원장의 중국 내 동선은 김 주석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김 주석은 방중 때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 당대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회담과 식사는 물론, 때로는 열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기도 했다. 주로 양국의 외교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최고지도자와 ‘잠깐’ 시간을 한 뒤엔 베이징의 중관춘, 상하이, 톈진 등을 방문해 중국의 발전상을 ‘경험’하는 시간을 즐겼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5월 상하이를 찾아선 “천지개벽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동선에선 아버지를 따라하고 있다. 지난해 3월을 시작으로 5월과 6월 등 이번이 네 차례 방중인데, 그중 지난해 5월 다롄 방문 때를 제외하곤 현장 학습을 즐겼다. 그는 지난해 3월 첫 베이징 방문에선 아버지가 찾았던 중국 내 실리콘밸리 중관춘을 방문했고, 북·미 정상회담(지난해 6월 12일) 직후 방중 때는 베이징의 농업과학원과 궤도교통 지휘센터 등을 찾았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 관리들을 만나보면 ‘실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며 “아마도 김 위원장의 강력한 지시와 주문이 있었던 듯하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와 격차를 보이는 북한의 현실을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북한 관리와 주민들의 거부감이 덜한 중국 내 발전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려 고삐를 죄려는 취지가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그의 중국 방문은 외양에는 ‘김일성 향수’를 자극하는 게 담겼는데 내부적으론 실리를 포함하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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