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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악순환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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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부신 신록의 계절 5월이 언제부턴가 우리에겐 「잔인한 달」이 됐다. 매년 봄이면 우리 사회엔 으레「5월 위기설」이 떠돌았다.
이런 위기감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노사분쟁과 학원사태, 나아가 노학시위가 절정을 이룰 것 만 같다. 이런 불안감은 4·30 노동자행사가 좌절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전국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가 30일 여의도 광장에서 갖기로 했던「세계노동절 1백주년 기념 한국노동자 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유산되자「투쟁본부」는 장소를 마산·창원지역으로 옮겨 4일 다시 대회를 갖겠다고 한다. 경찰은 이 행사도 원천봉쇄로 저지할 방침이다.
이 같은 양측의 양보 없는 대결은 결코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의 폭발력을 강화하고 악순환만 시킬 뿐이다. 지금의 난국을 극복키 위해 우리 모두는 보다 고뇌하고 진지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대중행사의 주최측은 책임 있게 행사를 조직하고 수행해야 한다. 집회·시위의 근본 목적은 다수의 의사를 결집하여 사회에 알리고 실현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모든 행사는 이 같은 목적에 맞게 합법·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그 규모도 필요 없이 커서는 안 된다.
그 방법이 사회불안을 가져와서도 안 된다. 과거 우리는 행사 주최자가 약속한 범위를 넘어 시위가 행해지고 그것이 폭력화한 것을 보아 왔다. 대중집회는 주최자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특정 다중이 참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단 행사가 시작되면 주최자의 규제 밖으로 흘러가기 쉽다.
이런 상황은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질서가 동요하고 각계의 리더십이 확립돼 있지 않은 과도기에 쉽게 일어난다.
따라서 대중행사를 주관하는 측은 통제가능의 범위 안에서 행사의 규모와 장소를 결정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한다. 이번 4·30집회의 원천봉쇄를 결정한 정부의 명분도 주최측의 통제능력과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러나 위험시되는 집회·시위의 원천봉쇄가 만능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입증해 왔다. 따라서 정부는 보다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임해야한다.
우선 집회의 자유와 시위의 권리는 헌법정신에 따라 보장돼야 한다. 법의 해석이 과도하게 확대되거나 그 적용이 무리하게 엄격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4·30 여의도 행사는 불특정 다수 군중이 참가함으로써 주최측의 약속과는 달리 과격해질 개연성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개연성이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추측일 뿐이다. 그런 막연한 예측만으로 법에 의해 보장된 집회·시위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경찰은 행사가 악화될 경우의 상황을 예측할 때 보다 냉철하고 치밀해야 한다. 위험을 과도하게 추정하여 계속 원천봉쇄로 임한다면 재야나 반정부 세력은 좀처럼 집회·시위를 할 수 없게 되고 사회의 긴장만 고조될 뿐이다.
우리의 시위문화는 아직 저 수준이다. 대중 시위의 성숙을 위해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언제까지 원천봉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시위의 탈선화를 방지, 억제하는데 더 역점을 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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