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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핏줄 말고 정으로 "열린 가족을 만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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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 생각은 누가 해줘?
임사라 지음, 양정아 그림
비룡소, 196쪽, 8000원

이혼 남녀가 재혼을 해 '내 아이'와 '네 아이', 그리고 '우리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요즘이다. 아빠 혼자, 또는 엄마 혼자 꾸려가는 '한부모 가정'도 있다. 최근 어머니만 있는 사람과 형제만 있는 사람, 남편을 잃은 사람 등이 함께 가족을 이뤄 사는 내용의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입양이 그렇듯 핏줄로 이뤄진 관계만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고집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다.

가족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장편동화 '내 생각은 누가 해줘?'는 이런 변화를 발빠르게 포착했다. 열두살 소녀가 새 아빠와 그의 아들, 재혼한 아빠의 부인과 이복 여동생 등 총 여덟 명의 가족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경쾌한 템포로 그려나간다. 아동 전문 출판사 비룡소가 해마다 우수 동화와 그림책에 주는 '황금도깨비상' 올해 수상작이다.

"발랄하고 산뜻한 작품으로 이혼 가정을 다룰 때 흔히 빠지기 쉬운 통념과 상투성을 벗어나 있다." 소설가 오정희씨의 심사평은 이 작품의 미덕을 콕 집어준다. 이혼으로 인한 아픔과 방황, 계모나 계부와의 갈등보다는 이혼과 재혼이 새로운 인간 관계의 형성일 수 있다는 시각이 퍽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을 통해 세상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인공은 부모의 이혼 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여자아이 황금빛나래. 나래 엄마는 TV에 출연할 정도로 명성 있는 미술평론가다. 아빠가 설명하는 이혼 사유도 "엄마가 너무 잘나서"일 정도다. 조각가였다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시골에 내려가 유황오리를 키우는 아빠는 나래의 오빠 민재를 데리고 재혼해 지체장애인 딸을 낳았다. 나래 엄마는 나래의 반 친구 희주 아빠와 조심스런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희주를 짝사랑하는 나래는 엄마와 희주 아빠가 결혼하게 되면 자신의 첫사랑이 불발될까봐 속앓이를 하기 시작한다.

결국 나래 엄마와 희주 아빠는 재혼을 한다. 그 결말까지 책은 나래의 성장통을 속도감 있게 그려나간다. "아무도 내 생각은 해주지 않아"라며 속상해하고 눈물 짓던 나래는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작가는 그 생각의 고개를 넘는 것은 누군가의 설득도 타이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책장을 덮을 무렵 "다른 집의 행복이랑 모습이 좀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불행한 건 아니라고 믿어"라는 오빠와 "사람은 핏줄로 사는 게 아니라 한 집에서 부대끼며 든 정으로 산다"는 이모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건 나래만이 아닐 것이다. 초등 4학년부터.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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