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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법원·검찰 42년 만에 이사…외딴섬 된 구도심 "상권 다 죽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 전주지법·전주지검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거리. 일부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밖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전주지법·전주지검은 올해 말 만성지구로 청사를 옮긴다. 전주=김준희 기자

2일 전주지법·전주지검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거리. 일부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밖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전주지법·전주지검은 올해 말 만성지구로 청사를 옮긴다. 전주=김준희 기자
2일 전주지법·전주지검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거리. 일부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밖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전주지법·전주지검은 올해 말 만성지구로 청사를 옮긴다. 전주=김준희 기자

"큰 기관 두 개가 없어지니 걱정이 크죠."

[르포]청사 옮기는 덕진동 법조타운 가보니 #올해 말 전주 만성지구 청사 이전 예정 #현 법원·검찰 부지 활용 방안 확정 안돼 #주민들 "상권 쇠퇴, 구도심 공동화 우려" #전주시, 법조3현 기념관·전시관 건립 추진 #전주 법원장·검사장 "좋은 방안" 찬성 #청사 소유권 받는 기재부 의견 변수

2일 오전 11시 전주지방법원과 전주지방검찰청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 음식점. 4년 전 가게 문을 연 주인 이모(69)씨가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전주지법과 전주지검이 올해 말 청사를 이전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법원·검찰 직원과 변호사·법무사 등이 손님인데 두 기관이 없어지면 여긴 구멍가게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젊으면 따라가겠지만 (법원·검찰이) 떠나면 장사는 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식당을 찾으니 40대 여주인이 손님맞이 준비에 바빴다. 그는 "아직 손님은 줄지 않았지만, 청사가 이전하면 이쪽 상권은 죽는다"며 "그쪽(만성지구)은 세가 비싸서 영세한 상인들은 못 간다"고 했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전주지법·전주지검은 올해 12월 전주 만성지구(만성동)로 청사를 옮긴다. 하지만 아직 현 청사 부지 2만8270㎡에 대한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아 상권 쇠퇴와 구도심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주지법·전주지검이 1977년 경원동에서 덕진동 현 위치로 옮기면서 이 일대는 42년간 행정·문화 중심지 구실을 했다. 청사 주변에 변호사·법무사 사무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법조타운이 만들어졌다. 음식점·커피숍 등 상점도 들어섰다. 전북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이달 현재 전북 지역 전체 변호사 271명 중 190여 명이 전주에서 활동한다. 변호사 사무실 대부분이 법원·검찰 주변에 밀집해 있다. 법무사 100여 명도 마찬가지다.

2일 오후 7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전주지검 앞 한 건물.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대부분이 불이 꺼져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2일 오후 7시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전주지검 앞 한 건물.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대부분이 불이 꺼져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하지만 법원·검찰이 옮겨 가면 변호사·법무사들도 대거 이탈해 기존 청사 일대는 공동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변호사 일부는 새 청사가 들어서는 만성지구로 둥지를 옮겼다. 전북지방변호사회도 올 하반기에 새 청사 부근에 회관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몇몇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밖에는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하지만 당장 이들이 한꺼번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대부분 임대 계약 기간이 남은 데다 만성지구 부동산 가격이 현 청사 부근보다 최대 4배가량 비싸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 법원·검찰 청사 앞 대로변 건물은 평(3.3㎡)당 400만원, 주택은 300만~350만원이다. 하지만 새 청사 인근 건물은 평당 580만~1100만원 수준이다.

법무사 최모(69)씨는 "사건도 없는데 굳이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사무실을 옮기면 수지 타산이 안 맞다"며 "여기 남겠다"고 했다. 최씨에 따르면 현 청사 인근 임대료는 11평(36㎡) 규모 사무실 기준 보증금이 1000만~5000만원, 월세 50만원 안팎 수준이다. 반면 만성지구는 보증금이 최소 5000만원 이상에 월세는 100만~200만원이어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게 최씨 주장이다.

주민들은 현 청사 일대를 '외딴섬'에 비유했다. 하천과 도로 하나만 건너면 인파가 북적이는데 유독 전주지법·전주지검 주변만 활기가 없어서다. 실제 전주천 너머 롯데백화점이 있는 서신동과 기린로 맞은편 전북대 주변은 유동 인구가 많고 상권이 발달됐다. 하지만 청사 일대는 오후 6시만 넘어도 건물 대부분이 불이 꺼져 암흑세계로 둔갑한다.

2일 전주지법·전주지검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 골목. 한 법무사 사무실 외벽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전주=김준희 기자

2일 전주지법·전주지검이 있는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 골목. 한 법무사 사무실 외벽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전주=김준희 기자

덕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주택은 10곳 중 1곳이 빈집이지만 노후화된 데다 어르신들이 많이 살아 청사가 이전해도 큰 변화는 없다"며 "다만 현 부지 활용 대책이 안 나오면 상가는 대부분 빌 것"이라고 내다봤다. 30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해 온 이모(60·여)씨는 "동네 사람들은 법원 자리에 뭐가 들어오나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주시는 현 법원·검찰 청사 부지에 '한국 사법을 지킨 양심'으로 추앙받는 법조 3현(賢) 기념관 건립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만든 김병로(순창) 초대 대법원장과 '검찰의 양심'으로 불리는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익산), '사도법관' 김홍섭 전 서울고법원장(김제)이 모두 전북 출신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점이 고려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위기를 맞은 사법부가 법조 3현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전주시는 한국문화원형 콘텐트 체험·전시관 건립도 구상 중이다. 이미 사전 용역비 3억원을 국비로 확보한 상태다. 청사 이전으로 공동화가 예상되는 구도심을 살리면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는 취지다. 최현창 전주시 기획조정국장은 "전주에 한옥마을(완산구)이 있지만 관광객이 1박2일 머물기엔 콘텐트가 부족하다"며 "법원·검찰 부지와 종합경기장 부지를 연결해 덕진구 권역에 문화·관광 축을 만들면 사람과 돈이 모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전주지검 청사. 두 기관은 올해 말 전주 만성지구로 청사를 옮긴다. 전주=김준희 기자

2일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전주지검 청사. 두 기관은 올해 말 전주 만성지구로 청사를 옮긴다. 전주=김준희 기자

법조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한승 전주지법원장은 앞서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해 법원행정처에 지역 여론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웅걸 전주지검장도 찬성이다. 두 기관장 모두 전주시가 만드는 '법조 3현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에 참여할 계획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전주지법·전주지검 현 부지는 그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치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청사 부지가 국유지여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사가 이전하면 국유재산법에 따라 현 부지는 기획재정부 소유로 넘어간다. 전주시 계획이 무산되면 기재부는 입찰 공고를 내고 매각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이 땅을 사들이면 아파트·호텔·쇼핑몰 등 난개발 소지가 커 전주시는 반대하고 있다.

전북도의 태도도 변수다. 전주시는 "청사 부지는 도유지가 아니어서 전북도는 아무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2016년 10월 "법원과 검찰청 이전 부지를 호텔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전북도와 전주시의 이견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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