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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차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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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내후년 총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노영민 기용설 속 의외의 인물 낙점 가능성도 #당정 불통 심각 … 대통령·이해찬 직접 대화하길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우측에 앉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와 좌측 노영민 주중 대사에게 각각 이런 질문을 던졌다. 둘 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패배하고 험한 시절을 보낼 때 곁을 지킨 핵심 측근으로 차기 비서실장감으로 거론되온 사람들이다.

우윤근은 “총선에 나가고 싶다”는 취지의 답을 했다. 하지만 노영민은 “도종환 장관이 잘하고 있습니다”며 출마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지역구(청주시 흥덕을)를 물려받은 도종환이 선전하고 있어 치고 들어갈 명분이 없다는 취지였다.

2004년과 08년·12년 총선에서 내리 3선(흥덕을)을 기록한 노영민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시집 강매’ 논란에 시달리자 출마를 포기했다. 대신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의 흥덕을 출마를 추진했다. 주변에선 노영민에게 “2020년 총선에서 흥덕을에 복귀하려면 이번엔 말 잘 듣는 측근을 출마시켜 4년만 의원을 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노영민은 “지역구에 대리인을 앉히고 부재지주 갑질을 할 순 없다”며 도종환 출마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내심으론 ‘정치 초짜’ 도종환이 험한 지역구 의원 노릇이 버거워 4년 뒤 흥덕을을 도로 넘겨줄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하지만 1년 뒤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도종환이 문화부 장관으로 벼락출세한 데다가 지역구 관리도 높은 점수를 기록하자 노영민은 마음을 바꿨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대신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다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충북도지사에 도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문 대통령은 조만간 비서실을 개편할 게 확실시된다. 말이 새어나갈 수밖에 없는 공관장 만찬장에서 측근인 우윤근·노영민에게 대놓고 거취를 물은 것부터가 문 대통령의 관심사가 어디 있는지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또 우윤근 등 측근들과 따로 대화를 나누면서 비서실 개편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허리를 보강해야 한다”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비서실장에) 앉혀야 한다”는 말들이 나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동의하는 인상이 짙었다고 여권 소식통은 전한다. “문 대통령의 특징은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쉽게 내치지 않고 쓴다는 거다. 그래서 차기 비서실장은 주니어 중에선 노영민, 시니어 중엔 지난해 문재인 대선 선대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낸 정동채가 유력하다.”

다시 노영민·정동채 중 하나를 고르라면 노영민이 1순위라는 게 여권 소식통 대부분의 관측이다. 노영민은 3선 의원으로 원내수석부대표와 상임위원장을 지낸 경륜이 있다. 운동권 일색인 친문재인 계에서 드물게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도 있다. 그가 비서실장이 되면 청와대 노선이 다소나마 실용주의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3년 차가 지나도록 개혁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문 대통령이 최측근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면 야당과 계속 각을 져 국정에 돌파구를 열기 어려울 수 있다. 또 내년에는 총선이 있다. 대통령 측근이 비서실장으로 있으면 “청와대가 공천에 관여한다”는 논란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차기 비서실장은 측근 대신 경제전문가 등 온건파를 써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비서실은 대통령의 대 국회 ‘메신저’로 격하되고 집권당의 비중이 커지는 점이 부담이다. 이를 틈타 유인태나 양정철 등 ‘원조 친노·친문’이 비서실장을 맡아 국정 그립을 조여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2기 비서실장 딜레마다.

이럴수록 문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종천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파문부터 민정수석실 사찰 논란까지 요즘 청와대가 뭇매를 맞은 사안들은 따지고 보면 ‘소통 부재’가 핵심 원인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대화를 기피하며 독주를 거듭하니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게이트 수준 참사로 확대되는 거다.

청와대와 밀접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민주당이 청와대 오더로 움직이는 거수기란 비난은 엄청난 오해다. 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뒤집은 거나 야당의 조국 수석 국회 출석 요구를 막은 건 청와대 뜻이 전혀 아니었다. 청와대는 오히려 대통령의 소신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이 일방적으로 철회한 데 난리가 났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단식 중인 손학규를 찾아가 위로한 것부터가 청와대의 뜻은 다르다는 암시였다. 조국 출석 문제도 그렇다. 당이 대책 없이 버티기로 일관하자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에 나가라’고 정리한 것 아니냐. 당정 간 불통이 이렇게 심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지금 청와대에서 여권 좌장 이해찬(6선·총리 역임)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문 대통령 이외엔 없다. 한병도 정무수석(초선) 이나 임 비서실장(재선)은 이해찬에겐 ‘구상유취’일 뿐이다.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이해찬과 대화해야만 당정이 단합되고 야당을 설득할 힘도 생긴다. 차기 비서실장은 그런 메커니즘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촉매 역할을 할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