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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주40시간 도입 등 사회 바뀌었으니 즉시항고 제기기간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12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12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A씨는 2015년 자신이 고소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자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기각됐다. A씨는 금요일에 결정문을 송달받고 대법원에 즉시항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이틀간은 주말인데다 월요일에는 개인 일정이 있어 법률상담을 받지 못 했다. 결국 A씨는 즉시항고 제기 기간인 3일이 지나 즉시항고를 하지 못했다. A씨는 '즉시항고를 3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는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의 즉시항고 제기 기간을 3일로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제405조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27일 “항고를 결정하는 사람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항고 준비를 위한 실질적인 기간 보장이 필요하다”며 “즉시항고 제기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정한 법 조항은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즉시항고는 법원 결정에 대해 따르지 않고 신청하는 항고의 일종이다. 집행유예 취소, 보석 허가나 각하 등 재판 절차와 관련해 법원이 내리는 판단을 결정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게 항고다. 즉시항고는 당사자의 중대한 이익이나 소송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속한 결론이 필요한 사안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헌재는 즉시항고 제기 기간 3일이 지나치게 짧다고 판단한 이유로 근로기준법 개정 등으로 사회가 변화했다는 점을 들었다. 헌재는 다수의견을 통해 “주40시간 근무의 도입과 확대로 주말 동안 공공기관이나 변호사로부터 법률적 도움을 구하는 게 쉽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날 형사사건은 내용이 더욱 복잡해져 즉시항고를 제기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과거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즉시항고 제기를 3일로 제한한 법 조항은 변화된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리에 앉은 서기석, 유남석, 조용호, 이종석, 김기영 재판관(왼쪽부터).[연합뉴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리에 앉은 서기석, 유남석, 조용호, 이종석, 김기영 재판관(왼쪽부터).[연합뉴스]

앞서 2011년과 2012년 헌재는 동일한 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2012년 당시 헌재는 “즉시항고는 신속한 결론이 필요한 사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기 기간을 단기로 정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6년만에 사회 현실이 바뀌었다며 이전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또 헌재는 3일의 형사소송 즉시항고 제기 기간이 민사소송 등과 비교해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했다. 헌재는 “형사소송의 제기기간을 민사소송 등의 절반에도 못 미치도록 한 것은 형사절차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이 즉시항고 기간은 1주일 이내다. 회생 및 파산은 2주 내에 즉시항고를 제기할 수 있다. 헌재는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즉시항고 제기 기간과 비교하더라도 3일은 지나치게 짧다”고 밝혔다.

한편 이은애·이종석 헌법재판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다수의견이 예로 든 사정들은 몇년 전 헌재의 합헌 결정을 변경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만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합헌 의견을 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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