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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 거스른 노무현, 국민눈높이만 맞춘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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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다. 지지자가 등을 돌려도 미래를 위해 옳은 길이면 앞만 보고 뚜벅뚜벅 갔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서 절정을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연금을 깎자”는 이회창 후보에게 “용돈제도가 된다”며 연금개혁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듬해 4월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연금개혁은 수급자가 적을 때 하는 게 좋다”며 공약을 파기한다. 야당은 ‘공약 파기 7선’이라고 비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차례 개혁 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7년 6월 대국민 담화문에서 “법안(연금개혁 법안) 처리 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설득했다.

‘바보 노무현’이 되살아났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최근 박능후 복지장관 주재 회의에서 “노무현·유시민이 바보냐”고 따졌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연금을 깎았고, 보험료를 올리려 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윤 박사는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낮았는데도 보험료를 13%로 올리려 했다”며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왜 뒤집으려 하느냐”고 따졌다. 2006~2007년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12%까지 떨어질 정도로 낮았다. 노 전 대통령은 악조건에서도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려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췄는데, 왜 문 대통령은 45, 50%로 올리려느냐고 따진 것이다.

10월 중순 스웨덴 연금청을 갔을 때 일이다. 연금개혁의 표본으로 여기는 ‘98년 개혁’의 배경을 물었다. 올레 세터그랜드 이사는 “경제위기가 있었고, 연금 안정화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재정이 고갈될 우려가 있어서 개혁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일하면 종전과 차이가 없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2057년 국민연금 재정 소진 우려가 크게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오래 일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이니 뭐니 해서 일자리가 주는 것도 연금 개혁 동력을 갉아먹는다.

정부가 엊그제 4지선다형 국민연금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가지는 현행 그대다. 나머지는 소득대체율을 45, 50%로 올리되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올리는 것인데, 이 역시 크게 보면 지금과 별 차이 없다.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문 대통령이 ‘국민 동의’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더니 결국 국민을 거스르는 길을 피해갔다. 현행 유지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내세웠다. 노무현의 길과 다른 길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