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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왜 울어?" 아들 달랬다가… 정주리의 육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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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서영지의 엄마라서 아이라서(12)

쉬는 날엔 일어나 뒹굴뒹굴한다. 늘 먼저 깨우는 건 도원이. 내 머리카락을 밟고 아빠 얼굴을 찌르고 형 위에 누우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휴일엔 어디라도 갈까 말만 하다가 오후가 되어버려 마트만 나가는 게 현실이다. [사진 정주리]

쉬는 날엔 일어나 뒹굴뒹굴한다. 늘 먼저 깨우는 건 도원이. 내 머리카락을 밟고 아빠 얼굴을 찌르고 형 위에 누우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휴일엔 어디라도 갈까 말만 하다가 오후가 되어버려 마트만 나가는 게 현실이다. [사진 정주리]

여성도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등 예전보다 아이 키우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제 다둥이 부모가 ‘존경받는’ 시대가 됐다. 다둥이 엄마로 주목받는 연예인 중 하나가 개그우먼 정주리 씨다. 정 씨는 2015년 12월 첫째 도윤이를 낳고 지난해 6월 둘째 도원이의 출산 소식을 알린 1년 뒤 셋째 임신 소식까지 알렸다.

그는 다둥이 혹은 일하는 엄마를 대표해 지난 7월부터 SNS 라이브 토크쇼인 ‘우리 함께 해Yo! 우행쇼’를 진행했다. 보건소를 직접 찾아가 임신·출산 지원 제도를 소개하거나 용인시 청소년 성문화센터를 찾아 아동 성교육에 대한 접근과 교육방법을 배우는 식이다. 지난 19일을 마지막으로 1기 방송을 마친 정 씨에게 우행쇼를 진행하면서 배운 육아 팁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정 씨의 방송과 인터뷰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정리했다.

▶ 아이와 늘 감정을 나누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서운함도 나눠야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오면 “도윤아, 엄마랑 우유 한잔할까?” 하면서 나란히 앉아요. 오늘 도윤이의 유치원은 어땠는지 얘기도 하고, 오늘 제가 옆집 아줌마 때문에 서운했던 일도 얘기해요.

당연히 아이는 어리둥절해 하죠. 이때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잠깐의 시간을 줘야 한대요. 그리고 격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전이되고,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표정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어요. 표정을 다양하게 쓰는 직업이라 더더욱 그랬죠.

도윤이에게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았어요.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더라고요. 저한테도 속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생긴 거죠. 이렇게 함께 엄마의 서운함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몇 번 거치면 나중에는 아이가 먼저 “엄마! 나랑 우유 한잔해”를 외치는 날이 오겠죠?

여든이 넘은 아이들의 증조할머니는 생활의 지혜가 대단하시다. 바퀴 달린 장난감 함은 끈을 달아서 끌어주신다. 사진은 둘째가 4~5개월 됐을 때. [사진 정주리]

여든이 넘은 아이들의 증조할머니는 생활의 지혜가 대단하시다. 바퀴 달린 장난감 함은 끈을 달아서 끌어주신다. 사진은 둘째가 4~5개월 됐을 때. [사진 정주리]

▶ 도윤이가 넘어져 울 때 저는 달랜다고 “도윤아, 남자는 씩씩해야지~ 울면 안 돼, 일어나. 도윤이는 안 울 수 있지? 뚝” 이런 식으로 달랬어요. 그런데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하는 것이 성 역할 고정관념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성 역할을 단정 짓고 ‘젠더’라는 박스 안에 가두게 되면 이 또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성교육이 된다고 해서 정말 놀랐어요. 성별 구별 없이 각각의 아이마다 성격이 다른데 그걸 생각 못 했던 거죠.

‘셋째가 딸이면 어떡하지? 남편과 오빠들도 옷을 신경 써서 입어야 할 거고’ 등등 성교육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드라마를 보다 울 수도 있는데 “남자가 왜 울어” “씩씩해야지”라고 하는 것도 성차별이더라고요. 도윤이도 상처를 받으면 울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방송하면서 그때그때 아이에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줘야겠다고 다짐했죠. 지금은 아이들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있어요.

▶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가 스킨십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고요. 저희도 싸울 때가 있죠. 도윤이가 더 어렸을 때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싸웠어요. 원래는 “아이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말자”고 했는데 아이를 안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죠. 그러고 나면 정말 미안하고 자는 애 손 잡고 후회하곤 했죠. 그때는 육아도 처음이고 서로 양보를 못 했고 예민했을 때니까요.

셋째까지 임신하고 나서는 몸으로 부딪히고 터득한 게 생기더라고요. 양보해야 하는 부분, 포기해야 할 부분 등이 생긴 거죠. 웬만한 일은 장난스럽게 넘어가려고 하고 절대로 애 앞에서는 안 싸우려고 해요. 오히려 스킨십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요.

남편이랑 저랑 아이들 앞에서 많이 안아요. 아이들이 우리가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 모습을 보면 평온하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도윤이가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엄마, 아빠, 도윤 사랑해요”라고 하면서 얼굴을 만지고 웃어요. 그럼 도원이도 비집고 들어와요. 그럼 도윤이가 “엄마, 아빠, 도윤, 도원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는데 그때가 정말 행복하죠.

증조할머니의 생활 지혜 두 번째.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이불을 채워 아직 몸을 못 가누는 아이들을 앉혀두는 의자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도원이가 3~4개월 때 앉혀둔 모습이다. [사진 정주리]

증조할머니의 생활 지혜 두 번째.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이불을 채워 아직 몸을 못 가누는 아이들을 앉혀두는 의자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도원이가 3~4개월 때 앉혀둔 모습이다. [사진 정주리]

지난 6개월 동안 우행쇼를 진행하며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는 정 씨.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생각한단다. “살아만 있어라”라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남편과 애가 웃고 있으면 됐다, 무사하게 살아만 있어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남편에게 생기던 불만도 사라졌다. 아빠가 아이들을 봐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더불어 ‘집은 내가 치우면 되지’라고 생각하니 남편과 안 싸우게 됐다고.

마지막으로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다.

“애 하나 더 낳으면 어떻게 키울지 걱정을 많이 하는데, 주변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 하는 걸 다 해주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주변에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육아를 따라하던 언니가 우울증이 왔어요. 다른 사람의 육아를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나와 아이에게 맞는 육아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도움말: 강혜정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조교수

도윤이는 자기 전이나 자고 난 후에는 본인이 고양이인 줄 안다. ’야옹야옹“ 하면서 온갖 애교를 부리고 비비적거린다. 형이 그러면 도원이도 따라서 애교를 부린다. [사진 정주리]

도윤이는 자기 전이나 자고 난 후에는 본인이 고양이인 줄 안다. ’야옹야옹“ 하면서 온갖 애교를 부리고 비비적거린다. 형이 그러면 도원이도 따라서 애교를 부린다. [사진 정주리]

아이와 감정을 나눌 때 서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도 나누는 것이 왜 좋다고 하는 건가요?
세상에 부정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그냥 감정일 뿐인데 “안 돼” “나빠”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부터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비유컨대 “화내면 안 돼“, ”짜증 내면 안 돼”라고 한다고 화나 짜증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안 돼”라고 하는 순간부터 화 안 난 척 짜증 나지 않은 척해야 하는 것이죠.

있는 것을 없는 척해야 할 때 에너지가 많이 들고 진정성이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거짓 자기’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인정, 수용, 소통되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아닌 척, 없는 척 부인, 부정된 감정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의식 깊이 억압된 감정은 당사자의 의식적 통제를 벗어나게 됩니다.

화나거나 짜증 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억압된 감정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격정적인 행동으로 분출됩니다. 이때 내는 화나 짜증은 자기 것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상황 탓이나 타인 탓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적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적에 둘러싸여 있다고 여기니 더 화나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무의식중에 성차별적인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을 해야 이런 부분을 조심하면서 성차별적인 발언을 줄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라는 나름의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각자가 다양하게 지닌 내면의 잣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어떤 부모, 어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남자와 여자에게 요구하는 성 역할도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혹은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권 등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이런 잣대는 주로 부모를 통해서 형성되며 부모가 지나치게 편협한 틀을 고집하는 것은 침범이고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경우 “~해야만 한다(should)”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종종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는 보다 보편적인 인간관을 지니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삶 그 자체가 자녀들의 삶으로 내재화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앞에서 부부가 스킨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왜 좋은가요?
한 사람의 경계는 어디서부터일까요? ‘피부 자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피부감각으로 정서적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심리구조가 형성됩니다. 엄마 젖을 빨 때 입안 점막의 감각, 대소변을 가리며 항문과 요도 점막의 감각, 갈아주고 재워주고 안아주고 씻겨주며 접촉하는 피부감각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최초의 신체 정서적인 관계는 경계를 넘나드는 진정한 공감과 수용의 관계입니다. 성인이 되어 너와 내가 경계를 넘나들며 신체·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공감의 관계가 재연되는 것이 이성 관계입니다.

부모가 스킨십을 한다는 것은 부모가 진정으로 한 몸 이룬 사랑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더 안정적인 환경이 있을까요?

한편 신체·정서적 경계를 지켜야 할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 바로 성추행·성폭행이 되는 것입니다. 감자나 사과 등 야채나 과일의 껍질을 벗겨놓으면 금방 상하고 보관이 어려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계가 존중되어야 할 관계에서는 신체·정서적 경계, 즉 피부 자아의 경계가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 사연을 받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 아이를 키우면서 닥쳤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냈거나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아이와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그 이후로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 사건을 겪으며 느낀 생각과 깨달음, 그로 인한 삶의 변화 등을 공유해주세요.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선배 엄마의 팁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영지 기자의 이메일(vivian@joongang.co.kr)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보내실 때는 이름과 연락처를 꼭 알려주세요. 사진과 사진 설명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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