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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치 행태 새 도전 직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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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해시 재선거의 후보 매수사건은 민주당과 김영삼 총재의 도덕성을 실추시키고 정치적 외기에 몰아넣으면서 정치권 전체에 일파만파의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이로 인해 3야당 및 여야간 협의가 사실상 중단돼 모든 현안들이 뒷전에 밀려 정치공백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 총재와 민주당의 좌절,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대립, 그리고 야3당 공조체제 붕괴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이번 사건은 중평연기 이후 강경화하는 시국흐름에서 소외됐던 야권을 더욱 위축·왜소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권의 도덕성이란 심각한 본질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사건의 심각성은 새로운 파문을 계속 만들 조짐이다.
「양 김의 리더십」으로 대변해온 야권구조의 일각이 치명타를 입으면서 야당정치 행태에 근본적 문제제기와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데까지 번질 기세다.
4당 구조하에서의 무리한 경쟁심이 이번 사건을 촉발했다는 점에서「야대」의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4·26총선 이후 형성된 4당 정치패턴은 매수사건과 지난번 중평연기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면모와 관계정립의 압력이 뒤따를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야3당은「야대의 위력」회복이란 과제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삼 총재의 대 국민사과 성명과 서석재 총장의 인책·탈당으로 진화에 나선 민주당은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아직도 가로놓여 있고「사과와 탈당」은 수습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피해 당사자인 공화당의 반발과 민정당까지 가세한 공세, 그리고 검찰 수사는 민주당을 포위망 속에 갇히게 하고있다.
이홍섭 공화 후보를 구속한 검찰이 서석재 총장의 즉각 구속은 물론 김일동 의원에 대한 사법적 처리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의 국면 탈출을 직 간접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서 총장의「독단 결행」에 의문점을 계속 던질 것이며 김 총재의「실추된 이미지」를 한층 어렵게 할 것이 틀림없다.
5공 청산 등 민주당이 구축해온 주력전선에 타격을 입히려는 민정당의「편승공세」도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 총재의 독자노선 시도를 꺾으려는 민정당의 공격에는 평민·공화당도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못지 않게 김 총재를 몰아세우는 것은 내부의 진통이다.
「우선 결속」과 조기수습에 비중을 두고 있는 세력과 당의 전면쇄신을 요구하는 쪽으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미 이같은 갈등은 사과의 적정 수준 문제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김 총재의 당초 사과문에는 대 공화 사과 부분도 포함됐으나 막판에 상도동 직계와 일부 부총재들의 제동으로 빠져 타일 김 총재가 다시 공화당과 김종필 총재에게 사과토록 한 2중의 실수를 저지르게 한점에 대한 당내 비판이 거세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김 총재의 측근정치가 제도적으로 거세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가 소장파는 물론 중진의원들에게서 강하게 나오고 있어 김 총재도 측근 정치의 배제를 강력히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선 단합」을 강조하는 쪽은 서 총장의 독자적인 행동인 만큼 사태를 여기서 막고 기존의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라는 주장이다. 자칫 당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민정당과 다른 경쟁야당에 그들로선 당 외의 전과를 갖다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민주 연구모임」등 소장 일부의원과 중진 일부에선 당 체질개선, 정책결정과 정의 공개 등 전면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해시 선거를 중평의 축소판으로 규정한 결정과정에서부터 매수사건이 상도동 직계의 감성적 정치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다.
김 총재의「안방정치」는 사라지지 않았고 친위정치의 당내기반은 여전한 만큼 이번 기회에 친위 그룹의 2선 후퇴와 파격적인 인사 쇄신만이 실추된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내세우고 있다.
전면 개혁파들은 노사·좌경문제 등 현안문제는 당분간 놔두고「근신」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쪽에선 현안문제의 신속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로선「우선 단합」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김 총재가 더 큰 모험을 해야한다」는 소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김 총재가 어떤 쪽을 택할지는 미지수다.
당직 개편도 이같은 선택과 맞물러 결정될 것으로 보이나 소장의원들의 주장이 주효해 일단 17일 당8역과 비서실장 및 대변인이 일괄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가용 인재난이 선택의 폭을 좁게 하고있다.
또한 대변인·기조실장 등을 임명한지 한달 밖에 안됐다는 점도 전면 개편의 전망을 약하게 만드는 요소다. 일부에선 원내 총무선거 등을 포함한 당직의 경선제 도입 주장도 강해 당직 경선제가 본격적으로 고려될 전망이다.
김영삼 총재의 고소 검토까지 나가고 있는 공화당은 김 총재가 17일 사과함에 따라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있다.
당초 민주당 측 사과문에서 자기들에 대한 사과가 빠지고 최각규 총장의 개입주장을 제기한데 대해 심한 불쾌감을 나타냈던 공화당은 장기적인 대립이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측면에서 다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야3당 공조 체제 가동을 위한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공화당의 싸움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아 온 평민당은 정국을 주도한다는 입장에서 중재에 나설 뜻을 표방하고 있다.
야권의 분열로「야대」가 무너지면 그것은 민정당에만 유리하지 결코 어느 야당에도 득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 측은 이 사태를 빨리 마무리짓고 정국의 초점을 문 목사와 이영희 교수 구속 및 노사문제 등으로 돌리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평민당은 17일 총재단 회의에서 서 총장 및 김일동 의원의 구속사태는 민주당과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워 의원구속 문제로 야당내 결속협상과 여당과의 막후절충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 매수사건이 야3당 공조를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기는 어렵게 할지도 모르나 현안의 시급함이 압력요소로 작용, 의외로 신속한 수습과 공조 회복으로 이어질 전망도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기계적인 합작은 사실상 불가능해 정국 전개에서의 야3당의 지분이 앞으로 어떻게 조정될지 주목된다.<박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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