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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빗장 수비'는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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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2년 월드컵 한국과의 16강전을 앞두고 프란체스코 토티는 "이기는 데 한 골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당시 감독 역시 1-0으로 리드를 잡자 서둘러 공격수 알레산드로 델피에로를 빼고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를 투입했다. 빗장을 걸어 잠그려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수비 위주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한국은 연장 승부 끝에 2-1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랐다.

4년이 흐른 뒤 이탈리아는 달라졌다. 13일(한국시간) 벌어진 가나와의 경기에서 전반을 1-0으로 마친 이탈리아는 빗장을 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후반 들어 더욱 줄기찬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수의 숫자도 줄이지 않았다.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몸놀림이 무뎌지자 빈첸초 이아퀸타를 대신 투입해 쐐기골을 이끌어 냈다. 유벤투스의 '해결사' 델피에로도 후반 교체 투입돼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전반보다 더욱 날카로운 공격으로 가나 진영을 휘저었다.

'아주리' 군단의 이 같은 변화는 2004 유럽선수권대회 직후 트라파토니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8년간 명문 유벤투스의 사령탑을 맡아 다섯 번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을 이끈 리피 감독은 유벤투스의 공격적 기풍을 대표팀에 주입했다. 그의 철학은 '여섯 명이 공격해도 수비 자원은 5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리피 감독은 "최전방 요원 둘 또는 셋을 동료가 지원하는 형태로 전술을 펼 것"이라고 일찌감치 방침을 밝혔고 이후 이탈리아는 폭발적인 공격력의 팀으로 변해 갔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 3-1승, 올 3월에는 독일에 4-1로 압승했다.

아리고 사키 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잠재력과 개성을 효과적으로 조합하는 리피 감독의 지도력이 이탈리아를 전도 유망한 팀으로 바꿔놨다"고 찬사를 보냈다.

노장 스트라이커 델피에로도 "우리는 이제 불굴의 정신을 갖춘 '진정한 강팀'으로 변했다"고 공격력이 배가된 아주리 군단을 평했다. 유벤투스의 승부 조작 스캔들로 이탈리아 축구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리피 감독이 새롭게 조련한 이탈리아 팀이 어떤 성적을 낼지 주목된다.

하노버=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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