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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보 평등 세상 같지만, 실상은 소수가 여론 쉽게 독점”

중앙일보

입력

온라인 환경이 가짜 뉴스, 여론 조작 같은 공격에 왜 취약점을 보일까. 인터넷상에는 누구나 의견을 자유로이 표출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수의 힘으로 여론을 쉽게 독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경남과학기술대ㆍKAIST 연구진과 함께 인터넷 백과사전, 논문ㆍ특허 등의 진화 양상을 빅데이터 분석해 집단지성 형성 과정의 규칙성을 밝혀냈다고 19일 밝혔다. 또 이를 바탕으로 모든 집단지성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식의 독점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연구 결과는 18일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인간행동’온라인 판에 실렸다.

디지털 뿐 아니라 논문, 특허 등 모든 집단지성에서 지속적으로 소수 기여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식의 독점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특히 인터넷 영역에서 소수의 지식 독점화는 더욱 심각하다. [자료 KISTI]

디지털 뿐 아니라 논문, 특허 등 모든 집단지성에서 지속적으로 소수 기여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식의 독점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특히 인터넷 영역에서 소수의 지식 독점화는 더욱 심각하다. [자료 KISTI]

연구팀은 복잡한 빅데이터 속에서 규칙성을 찾아내기 위해 ‘복잡계(complex systems) 방법론’을 도입해 대규모 집단지성 분석을 시도했다. 먼저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세계 273개 언어로 쓰인 863개 위키미디어 프로젝트 각각의 성장을 측정해 변화 양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데이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새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독점의 영향이라고 내다보고, 글을 올리는 사람 간의 기여도 불평등을 정량화해 ‘불평등 지수’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지식이 축적될수록 지식 생성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졌다. 소수의 독점적 영향력이 증가해 기여자의 행동을 대부분 지배하는‘독점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런 독점 집단은 집단지성 생성 초기에 나타나 지속적으로 독점적 영향력을 미쳤다.

신규 기여자가 이런 독점 계층에 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연구진은 밝혀냈다. 또 독점화 현상을 그대로 둔다면 결국 온라인상의 정보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어 왜곡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팀은 대표적 사례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라고 사례를 들었다. 스트릭랜드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 이전에도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였지만, 영문 위키백과에 등재됐던 그의 소개 글이 위키 관리자에 의해서 삭제를 당했다. 이유는‘이 사람은 충분히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윤진혁 KISTI 박사는“복잡계 과학을 통한 새로운 접근법과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 지성과 여론 형성 과정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정보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상황에서 정보의 소수 독점화를 줄이려면 새로운 참여자들의 적극적 활동을 지원하고 독과점에 대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상훈 경남과기대 교수는 “이제는 지금까지 주로 수동적으로 참고해왔던 그런 정보의 모든 기록을 분석하고 근본 원리를 파악해 장점은 부각시키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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