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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자는 노학 투쟁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의 대학 사회가 폐허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학이 죽어가고 있는 증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 같은 강좌를 한 교수는 참담한 심정으로 폐강시켰고 한 대학의 미술학과는 학과 전과목을 폐강시켰으며 끝내 한 대학은 무기한 휴업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이처럼 황폐화시킨 운동권의 핵심 세력들이 이젠 노학 연계투쟁을 선언하고 노사분규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시절, 강권과 탄압에 의해 대학의 문이 굳게 닫혀질 때마다 우리는 가슴 아파했고 그것의 부당함을 이심전심으로 통탄하며 분개해마지 않았다.
그 포악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이제 자율과 민주의 분위기를 창출하고 주도해야 할 대학 사회 내부가 이처럼 폐강·폐과·폐교로 치닫는 대학의 붕괴를 보면서 과연 무엇이 자율이고, 무엇이 민주 사회인지를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율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강압적 지배로부터의 자유인 동시에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질서의 확립이다. 강압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해서 스스로의 본령, 자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폭력일 뿐이다. 권위주의 시절의 타율적 강요와 재단 비리라는 내부적 부조리가 있었음을 사회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 사회의 자율적 정화 분위기는 필요함을 인정했다. 등록금 동결투쟁이 초기에는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지녔지만, 그 투쟁이 한갓 구호에 불과하고 종국의 목표가 대학의 황폐화인양 끝 갈데 없이 치닫는 지금의 양상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재단 전입금이 80%이상을 차지하는 건실하고 양식있는 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한림대에서 학내 투쟁이 휴업령에까지 이르렀다는데는 더 할 말이 없다. 학내의 비리 척결이라기 보다는 투쟁 결속을 위한 계획된 투쟁 방향임을 입증할 뿐이다. 이것이 정녕 자율인가.
무엇이 학내 민주화인가. 재단·교수·학생이라는 3주체가 대학이라는 연구집단의 발전을 위해 서로간의 대화와 토의를 통해 연구와 학습 기능을 높여 가는 것이 최대의 학내 민주화 목표여야 한다.
민주화의 열기가 휩쓸기 시작한 지난 1년 동안 연구실엔 못질을 하고 강의실의 의자는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으며 스승과 제자는 욕설과 야유, 그리고 서로의 몸싸움으로 서로를 적대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학내 민주화인가.
무엇이 현실참여인가. 대학생이 비록 피교육자라는 신분에 속하긴 하지만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젊은이이며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다음시대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대학 밖의 현실참여가 무턱대고 차단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사회의 시민은 자신의 직분을 지키는 의무와 현실에 대한 지각있는 참여가 동시에 요구된다. 강단에 선 교수가 가르치는 스승인 동시에 민주사회의 지식인이 듯 교실 속의 배움이라는 자신의 직분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학생으로서의 현실 참여가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직분을 버리고 총을 들고 일어서야 할만큼 지금이 전란의 와중에 있는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를 폐허로 만들고 휴업과 폐업의 위기에 있는 노사분규의 현장만을 찾아 또다시 노동현장을 폐허로 만들겠다는 노학 연계 투쟁은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투쟁인가. 이것이 진정한 대학생의 현실참여 목적인가.
파괴의 대상, 극복의 대상인 독재가 사라진 지금 제각기 제자리에서 자신들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할 때만이 우리의 진정한 민주사회는 밝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의 젊은 지성인들이 인식해 주기를 우리사회는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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