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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 때 실각한 린뱌오의 딸 호텔 사장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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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1960년대 문화혁명을 주도하다 축출됐던 린뱌오(林彪)의 딸 린리헝(林立衡.59.사진)이 호텔 사장이 됐다. 린뱌오는 마오의 가장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로 문혁 과정에서 마오의 처인 장칭(江靑)등 4인방과 대립하다 쿠데타를 계획했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돼 1971년 9월 부인.아들과 함께 국외로 탈출하려다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범중화권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왕(多維網)은 린이 지난해 3월 말 베이징(北京)시 중심부 싱푸(幸福)거리에 있는 황허(黃鶴)호텔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호텔은 4성급으로 중산층 고객과 단체 여행객을 주로 공략하고 있다. 건물 연면적은 2만2000㎡ 규모로 객실도 수백개에 달한다. 린의 장사 수완이 좋아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문혁 시기 공군보(空軍報) 편집에 관여했던 린은 '린뱌오 반혁명사건' 이후 2년간 격리 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잡은 뒤 중국 사회과학원으로 배속돼 사회생활을 재개했다. 린은 조사과정에서 "아버지가 탈주하려고 해 내가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이로인해 대의를 위해 가족 간의 정도 끊는다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되면서 사회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린이 호텔 사장 자리를 제의받은 것은 지난해 초. 보도에 따르면 당시 린뱌오의 고향인 후베이(湖北)성 황강(黃崗)시의 한 업체가 베이징에서 호텔사업을 계획한 뒤 사회에 영향력있고 덕망있는 사장 후보를 찾고 있었다. 수십 명의 후보자를 놓고 고민하던 이 업체는 린을 영입키로 하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처음에 린은 이 제의를 사절했다고 한다. 사업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한 데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부친의 복권이 요원한 시점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업체 측은 린에게 "황강시는 가난하다. 영향력 있고 능력있는 고향사람들이 외지에서 돈을 벌어 고향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며 설득했다. 결국 린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호텔이 막 문을 열었을 때 손님은 인산인해였다. 그러나 10일쯤 후부터 손님이 급격히 줄었다. 어떤 날은 호텔 하루 수입이 5000위안(60여 만원)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원인을 조사했더니 직원들이 린의 명성을 믿고 고객들에게 너무 거만했던 것이었다. 린은 곧바로 전 직원을 소집시켜놓고 "명성은 물거품 같은 것이다. 손님을 왕으로 접대하지 않는 업체가 생존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직원들을 질책했다. 그는 미소로 손님을 대하지 않고 서비스 질이 낮은 직원들은 곧바로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후 손님들이 다시 몰리기 시작해 지금은 베이징에서도 가장 손님이 많은 호텔 중 하나가 됐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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