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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란조끼’ 후폭풍…남유럽 재정 확대 불 질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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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호 15면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노란조끼 시위대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도시 르망에서 ‘마크롱은 사임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벽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노란조끼 시위대가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도시 르망에서 ‘마크롱은 사임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벽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크롱 개혁 제동, 정치적 큰 타격 #복지 확대로 적자 늘어 EU에 부담 #스페인·포르투갈도 재정 확대 요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등 시위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덕분이다. 네 차례에 걸쳐 프랑스를 휩쓸었던 길거리 폭력 시위가 일단 사라졌지만 시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소득 불평등 해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 시위 참여 시민들의 목소리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마크롱 대통령은 여전히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노란조끼 시위대는 여전히 ‘마크롱과 함께 한다면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그가 공정한 소득분배를 외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동안 추진해온 ‘친(親) 시장적 개혁’이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업률을 9%대로 낮추고 가계소득도 꾸준히 증가시켰던 그의 경제정책이 이번 사태로 상당부분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노란조끼 사태는 주변국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 확대를 허용해달라고 유럽연합(EU)에 요구하고 나섰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노란조끼 시위가 자칫 2011년 민주화 혁명인 ‘아랍의 봄’을 재연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마크롱

마크롱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대에 약속한 복지 확대 방침에 따른 파장이 크다. 마크롱의 당근책은 유류세 인상 백지화를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추가 근로수당 비과세, 저소득 은퇴자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 등이다. 이로 인해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당초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에서 3.4%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크롱이 약속을 지키는데 최대 100억 유로(약 12조900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프랑스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EU가 제시한 재정적자 상한선인 3%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또다시 이를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빌미로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남유럽 국가들도 재정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당초 EU는 역내 경제 안정을 위해 이들에게 재정 적자를 줄여달라고 요구해왔지만, 프랑스의 재정 적자 확대로 이들에게 이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진 상황이다. 노란조끼 사태가 EU 회원국들의 전반적인 재정 건전성 악화의 불씨가 된 셈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도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22%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월 1050유로(약 134만원)로 오르는 최저임금은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EU와 내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던 이탈리아 정부도 당초 전임정부가 약속했던 재정적자 규모의 3배 수준인 GDP 대비 2.4%를 고집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국가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시위사태가 지중해를 건너 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지난 2011년 중동을 휩쓴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발생했던 곳이다.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노란조끼를 입은 인권변호사 모하메드 라마단이 체포됐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노란조끼 사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는 혐의로 15일간 구금조치를 당했다. 이집트에서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30년 집권 끝에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때 쫓겨났지만, 2014년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도 민주화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랍의 봄의 진원지였던 튀니지에서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튀니지에선 노란조끼 대신 붉은 조끼 시위대가 등장했다. 주된 이유는 경제 문제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이 시민들을 거리 시위로 내몰고 있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노란조끼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벨기에·네덜란드·불가리아 등에서다. 지난 1일 브뤼셀의 EU 의회 앞에서는 노란조끼를 입은 5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세금 인상을 반대하고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네덜란드와 불가리아에서도 빈부격차 해소와 기름값,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독일에선 극우단체 인사들이 노란조끼를 입고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숫자로 본 경제] 1만 2000원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줄어드는 월급 액수=한국은행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최저임금 미만자(연초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와 영향자(내년 임금이 최저임금 미만)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의 비중이 1%P 높아질수록 월평균 근로시간은 2.1~2.3시간 감소하고, 이에따라 월급도 1만~1만2000원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은 상용직의 임금과 고용을 늘릴 수 있지만, 저임금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오히려 고용과 임금을 감소시킬 수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미만자와 영향자 비율은 2012년 이후 각각 5%P 정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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