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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정부 출범 뒤 되레 부녀회 급성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권을 발동한 지역은 어디입니까?”
“강남, 서초지역입니다.”
“왜 강남, 서초만 했습니까? 그 지역 이외에도 게릴라성 투기가 횡행하고 있는데요.”
“강남지역이 가장 심하다고 해서 우선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까?”
“문제가 포착되면 그렇습니다.”

2002년 국정감사에서 박주선 의원과 이남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 사이에 오간 대화다. 공정위는 2002년 8월 26일부터 31일까지 6일간 강남지역 아파트값 담합 조사를 벌였다. 조사에 앞서 공정위는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아파트 부녀회 등이 상행위를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2006년 현재 강남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 거의 모든 지역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는 부녀회가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아파트값 바로잡기. 각 가정에 전단을 보내 아파트값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거래하자고 촉구한다. 급매 등의 이유로 부녀회 설정 가격보다 낮은 가격이 붙어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는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된다. 이를 무시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거래가 끊기는 경우도 있다.

4년간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부녀회의 힘이 오히려 더 커진 것일까?
2002년 공정위는 부녀회의 담합행위에 대한 많은 자료를 입수했다. 하지만 제대로된 조치를 내릴 수 없었다. 법적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우선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법인이 아닌 개인들이 자신의 아파트를 파는 행위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일정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 시장을 점유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담합 가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부녀회는 이런 요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집 한 채를 파는 사람에게 소송을 제기하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집을 비싸게 내놓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던 것이다. 법적인 조치가 어려워진 가운데 부녀회를 자극하는 일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른 지역과의 비교다.

‘우리만 당할 수 없다’

‘우리만 당할 수 없다’는 다른 지역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부녀회 결성을 빠르게 만들었다. 높아져만 가는 강남, 분당의 아파트 가격이 원인이다. 이들 지역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음에도 아파트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움직인 것이다. 실제로 일산, 산본 지역 부녀회에서는 ‘우리가 강남, 분당에 비해 무엇이 부족한가’라며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

서울·경기의 주요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부녀회들도 ‘우리가 강북의 대치동’이라고 주장하며 대치동에 비견하는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원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부녀회원은 “강남 일대의 아파트 가격이 높은 것은 그만큼 그쪽 부녀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결코 뒤질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위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부녀회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회의 핵심은 ‘우리 아파트 가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다. 이때 부녀회장의 능력이 중요하다.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친 부녀회원들을 하나로 뭉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근 아파트 시세와 부동산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도 중요하다. 간혹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부녀회장들도 있다. 그들 대부분은 무능하다는 지적을 받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부녀회와 아파트 단지를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야만 한다.

부동산 정책이 부녀회 키웠다

부동산 시장 구조도 부녀회가 성장할 수 있는 원인이다. 부녀회가 급성장한 것은 참여정부 이후다. 2002년부터 문제가 제기되던 부녀회는 지금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금으로만 아파트 가격을 조절하려다 보니 생긴 부작용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공급이 충분하면 소비자로서 선택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부녀회의 힘은 떨어진다. 또한 세금으로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지만 오히려 매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부녀회로서 통제가 가능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 재테크 팀장은 “줄어든 거래의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고 반문한다. 부녀회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은 바로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정책 때문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녀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일단 정부의 의지는 분명하다. 부녀회의 담합을 막겠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정책이 준비됐다.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와 담합행위에 대한 처벌이다. 6월 1일부터 실행된 부동산 실거래가 정보 공개는 부동산 거래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으로 꼽혀왔다. 등기부상에 실거래 가격을 기재하도록 해 매수 희망자들이 등기부 열람을 통해 실거래 가격을 알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정착된다면 부녀회의 ‘호가 끌어올리기’는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가격을 올려 받으려 해도 매수자가 이미 정확한 시세를 파악할 수 있어 그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녀회에서 집값을 부추기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그동안은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보완한 법안이 곧 나타난다. 법안은 재경부와 건교부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미 법무부에 법률 검토도 의뢰한 상황이다.

건교부는 법률 검토가 끝나는 대로 대책을 발표하고 하반기 중에 법령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처벌 대상은 인터넷·아파트 게시물·방송 등을 이용해 담합을 조장하는 행위, 특정 부동산 중개소에 매물을 못하도록 막거나 몰아주는 행위, 일정 금액 이상을 받아주겠다면 매물을 유치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부녀회에는 벌금, 부동산 중개소는 영업정지를 가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안충환 건교부 토지관리팀 팀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을 금지하고, 어느 선까지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하며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부녀회의 법적 해석

담합과 시장질서 교란행위의 차이

정부가 부녀회를 제재하기 위해 사용한 법적 근거는 바로 ‘시장질서 교란행위’. 과거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녀회의 담합을 처벌하지 못했다.
‘담합’이란 같은 종류의 업체들이 서로 짜고 물건값이나 생산량 등을 조정해 다른 경쟁 업체를 따돌리거나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담합은 공정거래법을 어기는 불법 행위다. 문제는 부녀회가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공정거래법으로 처벌이 불가하다는 것. 오랜 기간 부녀회의 담합이 처벌받지 않은 이유다.

고민하던 정부는 부동산중개업법을 통해 부녀회 규제에 나섰다. 건교부는 현행 ‘공인중개사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법’에 새로운 조항을 첨부하려 하고 있다. 바로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행위다. 즉 부녀회의 담합을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적용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경제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경제의 핵심은 경제행위가 벌어지는 시장. 그런데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국가 근본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로 상대방 국가의 위조지폐를 찍어내 적국의 경제 혼란을 시도하며 유명해지기도 했다. 담합도 시장질서에 위배된 행위다. 담합을 하지만 담합에는 걸리지 않던 부녀회를 제재하기 위해 정부가 고심 끝에 찾아낸 해답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 조용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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