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 “박사는 나중에 따도 된다”…학생들 취업 러브콜 받고 현장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과학원(KAIS) 초창기 교수진의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 ‘헌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선진국에서 얻은 귀한 일자리를 마다하고 귀국해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후배 양성을 위해 전력을 다한 교수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04) #<56> 박송배 교수의 선견지명 #전자공학자 박송배 박사 #오레곤대 교수하다 귀국해 #카이스트에서 연구 활동중 #삼고초려 끝 과학원에 모셔 #전자회로 전공자로 학과주임 #박사 과정 개설 서둘지 않고 #기초 강한 산업인력 양성 우선 #졸업도 하기 전 산업체 취업해

2000년 3월 2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당시 미셀 라발로 세계공학한림원연합회 회장, 이기준 회장,안철수 대표,박송배 교수,최승복 교수,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중앙포토]

2000년 3월 2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당시 미셀 라발로 세계공학한림원연합회 회장, 이기준 회장,안철수 대표,박송배 교수,최승복 교수,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중앙포토]

과학원에서 헌신한 교수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이 전기 및 전자 공학과 주임교수로 후배들을 이끌었던 박송배(1924~2014년) 박사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미네소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오레곤대 조교수로 일하다 71년 귀국해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근무했다. 과학원 초창기 교수 초빙 작업을 벌이던 나는 박 박사를 찾아가 과학원으로 전임하도록 삼고초려를 했다. 학문이나 인격적으로 존경스러운 분일 뿐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재 양성이란 취지에 공감하면서 과학원 설립 정신을 꿰뚫어 이해할 정도로 확신에 찬 분이었다.

2000년 3월 2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당시 미셀 라발로 세계공학한림원연합회 회장, 이기준 회장,안철수 대표,박송배 교수,최승복 교수,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중앙포토]

2000년 3월 2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시상식. 왼쪽부터 당시 미셀 라발로 세계공학한림원연합회 회장, 이기준 회장,안철수 대표,박송배 교수,최승복 교수,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중앙포토]

특히 박 박사의 전공인 전자회로는 전자공학의 핵심이며 한국 전자산업을 일으키는 데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분야다. 특정 기능을 가진 부품을 조합해 원하는 기능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전자회로다. 당시 전자회로와 반도체 소자를 하나의 칩으로 합친 집적회로(集積回路)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었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서 일하던 전자공학자 잭 킬비(1923~2005년)가 58년 집적회로를 발명해 200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집적회로는 전자공학과 산업에 혁명을 일으켜 다양한 전자제품을 더욱 작고 값싸게 만드는 길을 열었다. 오늘날 필수품인 컴퓨터와 휴대전화 탄생의 공학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박송배 교수가 과학원에 갓 부임했을 당시의 모습. [중앙포토]

박송배 교수가 과학원에 갓 부임했을 당시의 모습. [중앙포토]

과학원에서 박 박사는 학교 전체를 이끄는 중진 교수 역할을 하면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산업인력 양성이라는 과학원의 설립 정신에 충실했다. 개원 초기 과학원에 좋은 교수와 학생이 집결하면서 박사 과정을 조속히 개설하자는 의견이 팽배해 기계공학과가 이를 가장 먼저 설치했다. 기계공학과도 실력이 대단했지만, 전기 및 전자공학과도 당시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주임교수였던 박 교수는 학문의 깊이가 중요한 박사 과정은 산업 현장을 이끌 석사와 산학협력의 전문석사 과정을 탄탄히 다진 다음에 개설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학과의 젊은 교수들은 산업계를 이끌 인력 양성이 먼저라는 박 교수의 생각을 잘 따라주었다.

박송배 교수(오른쪽)의 카이스트 사랑은 정년 퇴임 이후에소 계속됐다. 1990년 카이스트에 연구기금 을 전달하며 후학을 격려하는 모습이다. [사진 카이스트]

박송배 교수(오른쪽)의 카이스트 사랑은 정년 퇴임 이후에소 계속됐다. 1990년 카이스트에 연구기금 을 전달하며 후학을 격려하는 모습이다. [사진 카이스트]

기초가 탄탄했던 전기 및 전자공학과 학생들은 졸업도 하기 전에 산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취업 제안을 받고 한국 전자산업은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을 이끌게 됐다. 산업 발전이란 마라톤 경주처럼 빨리 가는 것보다 멀리 가는 게 더 중요하다. 마라톤 경주에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과속 유혹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하게 길을 갔던 박 박사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멀리 볼 줄 아는 이러한 전문가 정신이 우리 사회를 이끌기를 바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