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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취임 땐 "수시 소통" 1년 뒤 "국내 질문 안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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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소통 방식 달라진 문 대통령 왜 #경제 지표 악화, 지지율 하락에 #현안 언급 피하고 언론 접촉 줄여 #전문가 “소통 땐 역효과 판단한 듯” #“경제에 초조하다 메시지 줄 수도”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자단과 산에 오르며 대화를 나눴고, 5월 21일에는 주요 인선 발표를 직접 했다. 지난해 6월과 9월 미국 방문 뒤에는 기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자를 직접 지목하는 ‘미국식 회견’도 시도했다. 비공개로 진행한 지난 5월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도 기자실을 찾아 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요즘엔 문 대통령의 소통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1일 공군1호기에서 해외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국내 현안은 답하지 않겠다고 해 야당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특히 경제 현안에 대해선 유리한 통계만 선별적으로 인용했다는 논란을 야기한 일도 있다. 지난 5월 31일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하면서 위기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반발을 샀다. 이 발언이 나오기 불과 1주일 전 통계청은 “1분위(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8% 줄었다”는 내용의 분배 악화를 경고한 상태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도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자동차 생산이 다시 증가했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업계에선 “물이 어디서 들어온단 말이냐”며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식이란 반응이 나왔다.

또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와 맞물려 문 대통령의 현안 관련 발언이 대체로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관련 언급을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 방식도 취임 초와 같은 언론·시민들과의 직접 접촉은 많이 줄었고, 대부분 공식 회의 때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발표하는 형태로만 이뤄진다. 쌍방향 소통 대신 일방향 소통이 대세가 된 것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미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상태에서 경제에 대해 통제가 불가능한 방식의 회견 등을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국민을 진솔하게 설득하는 과정이 사라지면서 문 대통령의 강점이었던 겸손과 솔직함이 오히려 고집으로 잘못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현안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부총리와 내각에 분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뒤 이날까지 사흘 연속 동선을 함께하며 “경제사령탑”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내각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긴 하지만 실제 역할을 분산하기에 앞서 명시적 선언이 있어야 한다”며 “이런 장치도 없이 최근 기내간담회처럼 ‘현안은 답하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국민은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초조해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내 현안에 대한 발언을 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피하려 한다는 오해를 줄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신년 기자회견을 비롯해 직접 소통할 기회가 곧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약속한 직접 소통이 꼭 언론이나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며 “장관들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소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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