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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성장 아우성인데…길어지는 '文의 침묵'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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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21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의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공교롭게 당시 발표했던 3명의 '경제라인'은 전원 경질되거나 사표를 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21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의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공교롭게 당시 발표했던 3명의 '경제라인'은 전원 경질되거나 사표를 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자단과 산에 오르며 대화를 나눴고, 5월 21일에는 주요 인선 발표를 직접 했다. 지난해 6월과 9월 미국 방문 뒤에는 기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자를 직접 지목하는 ‘미국식 회견’도 시도했다. 비공개로 진행한 지난 5월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도 기자실을 찾아 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요즘엔 문 대통령의 소통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1일 공군1호기에서 해외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국내 현안은 답하지 않겠다고 해 야당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들에게 질문자를 지정해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들에게 질문자를 지정해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경제 현안에 대해선 유리한 통계만 선별적으로 인용해 했다는 논란을 야기한 일도 있다. 지난 5월 31일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하면서 위기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반발을 샀다. 이 발언이 나오기 불과 1주일 전 통계청은 “1분위(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8% 줄었다”는 내용의 분배 악화를 경고한 상태였다.

 면직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왼쪽 사진). 오른쪽은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 [뉴스1]

면직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왼쪽 사진). 오른쪽은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 [뉴스1]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도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자동차 생산이 다시 증가했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업계에선 “물이 어디서 들어온단 말이냐”며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식이란 반응이 나왔다.

또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와 맞물려 문 대통령의 현안 관련 발언이 대체로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관련 언급을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 방식도 취임초와 같은 언론·시민들과의 직접 접촉은 많이 줄었고, 대부분 공식회의때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발표하는 형태로만 이뤄진다. 쌍방향 소통 대신 일방향 소통이 대세가 된 것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미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상태에서 경제에 대해 통제가 불가능한 방식의 회견 등을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국민을 진솔하게 설득하는 과정이 사라지면서 문 대통령의 강점이었던 겸손과 솔직함이 오히려 고집으로 잘못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가운데) 등 국무위원들이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왼쪽은 김수현 정책실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가운데) 등 국무위원들이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왼쪽은 김수현 정책실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국내 현안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부총리와 내각에 분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임명한 뒤 이날까지 사흘 연속 동선을 함께하며 “경제사령탑”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에대해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내각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긴 하지만 실제 역할을 분산하기에 앞서 명시적 선언이 있어야 한다”며 “이런 장치도 없이 최근 기내간담회처럼 ‘현안은 답하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국민은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초조해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한국시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국빈방문국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클랜드/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한국시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국빈방문국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클랜드/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내 현안에 대한 발언을 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피하려 한다는 오해를 줄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신년 기자회견을 비롯해 직접 소통할 기회가 곧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약속한 직접 소통이 꼭 언론이나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장관들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소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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