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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땅굴 탐지레이더 만든 나정웅, 탱크주의 배순훈…KAIS 스타 교수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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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반도체 이야기가 하다 보니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그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에서 근무하며 연구와 인재 양성에 힘쓴 교수들의 숱한 사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감사해야 할 분이 수없이 많다. 1970년대 과학원 초창기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출한 시기였다. 열정과 능력을 함께 보여줬던 특출한 교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산업 현장에 직접 뛰어든 교수도 적지 않았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02) #<54> 열정·능력 겸비한 인재 산실 #반도체 역군 기른김충기 교수 #전자공학과 1호 나정웅 교수 #이중홍 교수, 경방 회장 맡아 #윤덕용 총장, 연구 업적 많아 #열정·능력의 교수 잊지 못해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39;1호 교수&#39;인 나정웅 박사가 1989년 북한의 제4땅굴을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탐사장비인 &#39;연속 전자파 지하 레이더&#39;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중앙포토]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39;1호 교수&#39;인 나정웅 박사가 1989년 북한의 제4땅굴을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탐사장비인 &#39;연속 전자파 지하 레이더&#39;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중앙포토]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선 초단파분야의 나정웅 교수와 반도체 분야의 김충기 박사가 초창기부터 핵심 교수로 근무했다. 학과의 1호 교수인 나 박사는 미국 뉴욕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과학원 창립 교수로 부임했다. 전자파 연구에 매진해 지하에 숨은 땅굴을 찾아내는 ‘연속 전자파 지하 레이다’를 발명했다. 북한 땅굴로 사회가 불안하던 89년 이를 이용해 제4땅굴을 발견해 과학기술의 힘을 보여줬다. 광주 과기원장으로도 봉직했다.

제4땅굴 발견 뒤 열린 남북군사정전위 본회담장 밖에 유엔군 측이 전시해놓은 땅굴 관련 증거품들을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지질학자와 공병장교가 살펴보고 있다.[중앙포토]

제4땅굴 발견 뒤 열린 남북군사정전위 본회담장 밖에 유엔군 측이 전시해놓은 땅굴 관련 증거품들을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지질학자와 공병장교가 살펴보고 있다.[중앙포토]

김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페어차일드 연구소에서 일하다 75년 귀국해 과학원에 부임했다. 반도체 소자, 집적회로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남겼고 수많은 제자를 훈련해 카이스트를 이 분야 연구·교육의 중심지로 키웠다. 95~98년 카이스트 부총장으로도 학교발전에 매진하였다. 그 뒤 교수들의 추천으로 총장 후보가 됐지만 사양하고 연구실로 돌아와 퇴임까지 학자로서 자리를 지켰다.

대우전자 사장 시절의 배순훈 박사(가운데)가 탤런트이자 광고모델인 유인촌(오른쪽)씨가 대우전자의 신제품인 탱크 냉장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대우전자 사장 시절의 배순훈 박사(가운데)가 탤런트이자 광고모델인 유인촌(오른쪽)씨가 대우전자의 신제품인 탱크 냉장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기계공학과 초창기 교수로 72년 부임한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출신의 배순훈 교수가 있다. 79년 산업계로 옮겨 대우엔지니어링과 대우조선 부사장으로 지내다 82년 대우전자 사장을 맡으면서 ‘탱크주의’를 내세워 한 시대를 풍미했다. 95~97년 대우전자 회장을 거쳐 98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카이스트로 돌아와 2009년까지 서울 부총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지냈다. 버클리대 출신의 이중홍 교수도 기계공학과에서 산업계 인재 양성이란 건학 이념을 솔선수범하다가 경방 회장을 맡아 산업계에도 공헌했다.
재료공학과의 윤덕용 교수는 카이스트 총장을 지내면서도 본인의 전공인 분말 재료학에서 많은 업적을 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화학공학과의 고 조의환 교수도 후배 지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생명공학과 고 이현제 교수의 열정도 잊을 수가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에는 이처럼 수많은 인재의 헌신과 희생이 바탕이 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6·25 전쟁 중에 천막 교실에서 길렀던 애국심을 실현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일궈낼 수 있었던 우리 세대는 정말 행복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 공적을 후배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 우리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 이 땅의 모든 세대가 합심해 ‘과학기술 입국’을 이룬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어렵고 힘든 나라 사람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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