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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아무나 할 수 있나 ― 사적교섭은 통일 노력에 도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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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충격의 일요일이었다. 문익환 목사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국민들은 경악과 혼돈을 금할 수 없었다.
국내적으로 이념과 노선이 양극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때에 종교계와 재야의 책임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자의적으로 평양에 가서 저쪽 지도자들을 만난다는 것이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통일에의 접근에 과연 보탬이 되는 일인지를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문 목사 일행의 행위는 명백히 현행법 위반이며 정부의 정책과도 어긋난다. 노태우 정부는 대북 정책에서 북한을 「동반자」로 규정하고있지만 대북 교류는 「창구 일원화」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 원칙에는 대체적인 국민적 합의도 이뤄져있다.
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 문 목사는 국내의 어떤 책임 있는 단체나 지도자와도 사전 협의 없이 떠난 것 같다. 그가 자신의 통일론을 발표할 수도 있고 이미 발표한바 있지만 그것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고 여론형성을 위한 것이지 바로 교섭이나 그 밖의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일성을 만나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한다. 굳이 개인자격의 사적접촉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과거관례와 지금의 사정, 통일문제의 성격상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통일논의와 남북협력에 저해되고 국내 분열만 심화시키게 된다.
남북관계는 고도의 질서와 체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통제 밖에서,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서 북한에 접근한다는 것은 혼란만 초래한다.
그 동안 정부는 남북관계를 크게 자유화하고 개방했으나 원칙의 적용에 일관되고 명백한 선을 정해놓지 못했다. 대학생의 평양 청소년축전 참석문제도 당초부터 확고한 입장이 마련돼있지 않았었다.
그 결과 국민과 학생들은 전대협이 평양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와서 정부는 보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굳건하지 못한 방침 때문에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대북 지침을 분명히 하여 국민에게 알리고 그것을 강력히 지켜나갈 태세를 갖춰야 한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북한의 태도다. 평양은 누구를 상대로 하여 남북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것인가. 한국정부를 상대하지 않고 달리 남북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한다면 중대한 착각이다. 이것을 북한당국이 모를 리 없다. 그러면서도 남한의 일부 사회세력을 상대로 대화와 접촉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우리 내부를 교란·분열시키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문 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에서 접촉·교류의 질서와 원칙이 재정립돼야 한다.
우선 관련 법률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국가보안법만 하더라도 그 개정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빨리 법률과 정책을 일치시켜야한다. 지난번 정주영씨의 방북과 그 협의의 깊이가 우리 법 체제에서 합당하냐의 의문이 제기됐었음을 유념해야한다.
다음은 광범하게 나뉘어있는 통일론을 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국민연합기구의 필요성이다. 이것은 재야와 운동권까지 포함된 각계 각층의 여론과 의사가 골고루 반영될 수 있도록 개방되고 여기서 합의된 원칙에 따라 대북 관계를 조정해 나가야한다. 이 기구는 상징적 ·형식적기구가 아니라 국민의사를 집결하는 실질적 연합기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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