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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방·적성국 구별도 어려워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21일 있었던 육사졸업식에서의 민병돈 교장 식사 내용을 놓고 여러 시각에서 각기 다른 의견들이 계속 표출되고 있다.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훈시내용에 강한 시사성 의미가 부여됐다는 해석이 있는가하면 한두 대목을 제외하고는 육사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 교장의 졸업식사 내용 중 민감한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을 맞이하기까지 제3공화국에서 태어나 제6공화국까지 살아왔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루어졌을 그 많은 변화를 여러분은 불과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몸소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국제정치 및 국내정치 상황의 급격한 변화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국방의 제1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변화들을 예의주시하고 국방에 빈틈이 없도록 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여러분은 근간의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특별히 남다른 눈으로 진지하게, 그리고 어느 부분은 착잡한 심정으로, 또 어느 부분은 매우 염려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고 환상과 착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이고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매우 해괴하고도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우리사회의 이러한 현상을 보고, 또 이러한 현상에 직면한 군의 처지를 보고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러한 현재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알려고 한다면 그 원인이 된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알려고 한다면 현재의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될 것입니다.
흔히 인용하는 손자병서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명구는 전투지휘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책 결정 자를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싸움은 여러분의 영역에, 그리고 싸울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일은 정치인의 영역에 속하는 일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치인이 평화통일을 외칠 때일수록 우리 군인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 교장은 누구인가>
지난 21일의 육사졸업식 교장치사 연설로 파문을 일으킨 민병돈 육사교장(55·중장)은 전형적인 야전형 무골로 군 내부에서는 평가되고 있다.
민 교장이 그날 했던 연설내용과 대통령에 대한「결례」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군 내부에 알려지자 그의 평소 성품과 소신으로 봐서『민 교장이라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 중장은 평소 형식적인 의전을 매우 싫어하고 자기 신념이 분명한 군인으로 평판이 나 있다고 정통한 군 소식통이 전했다.
이번 육사졸업식을 준비하면서도 그는 조촐하게 준비토록 지시했을 만큼 쓸데없는 의전절차에 구애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우한 동료나 선·후배를 잘 챙기는 의리중시형이어서 육사15기 전후4기생 정도는 거의다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교제 폭이 넓다.
비리나 원칙에는 엄격한 군인으로 가까운 사이라 해도 청탁은 금물이라는 평.
서울 출신으로 휘문고 시절부터 독어에 뛰어나 영관장교시절 서독 괴테 대학에 유학했고 육사에서 독어교관을 한때 지내기도 했으나 학자형은 아니었다는 주변 얘기.
10여년간 특전사에서 복무했고 80년에는 국보위 내무위원도 지냈으며 20사단장·육본정보 참모부장·특전사령관을 거쳐 작년 7월1일 육사교장으로 전임됐을 때 주의의 시각과는 달리 본인은 기뻐했다는 후문.
지난해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만나 『군인을 마치 머리에 뿔이라도 난 사람처럼 생각하지 말라』며 모자를 벗어 보이기도 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육사 재학시절 럭비부 부장으로 고명승 3군 사령관, 이진삼 육참차장과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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