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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 빠른 정복 위해 ‘쇼미’ 택해…막상 1위 하니 허탈”

중앙일보

입력

3일 싱글 '워크 업 라이크 디스' 발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래퍼 나플라와 루피.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3일 싱글 '워크 업 라이크 디스' 발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래퍼 나플라와 루피.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지난달 종영한 Mnet 힙합 경연 예능 ‘쇼미더머니777’(이하 쇼미)의 승자는 누구일까. 1만3000대 1이라는 역대 최고 경쟁률을 뚫고 최종 우승을 거머쥔 나플라? 아니면 미국 LA에서 나플라를 발굴해서 한국으로 데려온 데 이어 본인도 준우승을 거둔 루피? 혹자는 예선 탈락했지만 남다른 화제성에 힘입어 파이널 무대에서 축하 공연을 펼친 마미손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승자는 ‘메킷레인 레코즈’다. 2016년 설립한 신생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나플라와 루피가 나란히 1ㆍ2위를 차지하면서 한국 힙합신은 물론 대중에게 확실하게 레이블 이름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777’ 1ㆍ2위 나플라&루피 #4일 싱글 ‘워크 업 라이크 디스’ 발표 #미국 LA서 만나 ‘메킷레인 레코즈’ 결성

이들의 등장은 악마의 편집으로 소문난 ‘쇼미’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경연 초반부터 참가자의 랩을 돈으로 환산해 평가하고, 그 돈을 다시 뺏고 빼앗기는 파이트 머니 쟁탈전을 벌였지만, 나플라와 루피는 제작진이 짜놓은 판에 말려들지 않았다. 상대방을 곁눈질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오직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장점이 더 돋보일 수 있을지 집중하는 방법을 택한 것. 자연히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하는 디스전보다는 팀원의 강점을 살려주는 그룹대항전에서 더욱 빛났다.

'쇼미더머니777' 우승자 나플라는 우승 상품인 자동차를 루피에게 선물하며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상금 2억원에 대해서는 "일단 부모님께 드릴 생각인데 아직 못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쇼미더머니777' 우승자 나플라는 우승 상품인 자동차를 루피에게 선물하며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상금 2억원에 대해서는 "일단 부모님께 드릴 생각인데 아직 못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방송 종영 후 한 달. 이들이 들고나온 것 역시 각자 솔로 신곡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부른 싱글 ‘워크 업 라이크 디스(Woke Up Like This)’다. 3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나플라는 “처음 ‘쇼미’에 나갈 때부터 우리 둘이 1ㆍ2위를 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그 계획이 성공해서 예정대로 ‘루플라’ 작업을 하게 됐다. 요즘 솔로 래퍼들은 많은데 다이나믹 듀오나 슈프림팀 같은 듀오는 없다 보니 사람들이 그걸 고파할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싱글을 시작으로 내년 봄 루플라 앨범을 낸다는 계획이다.

수장으로서 레이블을 이끌고 있는 루피는 “메킷레인 서열 1위는 항상 플라였다”며 “음원 성적이나 공연 섭외를 떠나 음악성이나 아이디어 측면에서 많이 배우고 있기 때문에 플라가 1위를 하고, 내가 2위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 생각했다”고 거들었다. 그는 자신이 동생들을 챙기는 엄마 같은 스타일이라면, 나플라는 아빠처럼 이끄는 스타일이라고 비유했다. 오왼 오바도즈ㆍ블루ㆍ영웨스트 등 새로운 힙합 루키로 꼽히는 이들이 이곳 소속이다.

루피는 "이번 싱글은 루플라 앨범의 선 공개 곡"이라며 "미국에서 작업을 마무리 해서 내년 봄, 늦어도 상반기 안에는 앨범 형태로 발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루피는 "이번 싱글은 루플라 앨범의 선 공개 곡"이라며 "미국에서 작업을 마무리 해서 내년 봄, 늦어도 상반기 안에는 앨범 형태로 발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지금이야 ‘쇼미’가 낳은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루피는 ‘기어(Gear) 2’ 등 이전 발표곡에서 출연 래퍼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군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루피는 “미국에서 한국 힙합신을 볼 때는 ‘쇼미’ 말고 다른 신선하고 기발하고 획기적인 방식은 없느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해외에서 온라인을 통해 접하다 보니 오만하기도 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몽상가적 기질도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나플라는 “한인타운에 살면서 한국어로 랩을 하고 한국에서 더 많은 리스너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던 찰나 루피 형이 한국에 간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왔는데 스케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제일 컸다”며 “현실적으로 내년은 어떻게 될까, 내후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저는 ‘쇼미’에 별로 부정적인 생각은 없었다. 혹시 나중에 대해 출연할지도 모르니 비판도 안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이들은 ‘쇼미’행을 택했다. “제 자존심을 조금만 굽히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소속 아티스트와 그들이 하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쇼미’가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면 말을 번복하는 위험을 감수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거죠. ‘굿데이’가 음원차트 올킬을 하는 걸 보면서도 기쁨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어요. ‘쇼미’라는 플랫폼에 들어서자마자 차트 1위를 한 현재에 대해서도, 앞으로 이 강력한 플랫폼 없이도 1위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미래에 대해서도.”(루피)

나플라는 "'쇼미' 특성상 디스가 필요한 건 이해하지만 다들 이미 친해진 상태에서 디스를 하려니 힘들었다"며 "최대한 마일드하고 재치있게 넘어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나플라는 "'쇼미' 특성상 디스가 필요한 건 이해하지만 다들 이미 친해진 상태에서 디스를 하려니 힘들었다"며 "최대한 마일드하고 재치있게 넘어가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진 메킷레인 레코즈]

그럼에도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정답을 맞히는 대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오래도록 음악을 할 수 있는 일임을 일찌감치 체득한 덕분이다. “한국에서 ‘1 더하기 1은 3’이라고 답하면 선생님이 틀렸다고 손바닥을 때리고 한 기억이 있어요. 미국에서 ‘3’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런 게 창의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좋은 음악은 언어를 모르고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기쁨 혹은 슬픔 같은 감성은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잖아요.”(나플라)

힙합이 남혐·여혐 등 혐오로 점철된 음악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루피는 지난 7월 여성가족부와 함께 만든 성평등 음원 ‘해야 해’를 발표하기도 했다.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어요. 미국은 워낙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인종·성별·계급에 관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그로 인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거든요. 저 역시 누군가를 비하할 의도는 없었지만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겼잖아요. 앞으로도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음악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고 싶습니다.”(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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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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