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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도 불법 천막 치는데” 국회로 몰려드는 시위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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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평화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을 위해 3일 오전 집회·시위가 금지된 서울 국회 본청 앞에 천막당사를 설치했다. [김경록 기자]

민주평화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을 위해 3일 오전 집회·시위가 금지된 서울 국회 본청 앞에 천막당사를 설치했다. [김경록 기자]

최근 국회 경내에서 집회·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3일 오전 국회 본관 계단 아래에 당 상징 색인 연두색 천막을 세우고 ‘천막당사’ 농성을 시작했다. 평화당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전략 태스크포스(TF)팀’은 지난달 30일 회의에서 천막당사 설치를 의결했다. 국회사무처는 국회 경내에선 집회·시위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천막당사는 안 된다고 밝혔지만 평화당은 이날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설치를 강행했다.

평화당 “연동형 비례대표 관철” #4월 한국당 이어 국회 천막농성 #민노총·시민단체 잇단 국회 집회 #정당이 불법 시위·점거 빌미 줘

평화당이 천막 설치를 강행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등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평화당은 천막 뒤편에 ‘내 표! 어디 갔소?’라고 적힌 대형 걸개를 걸고 천막 안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내 표! 어디 갔소?’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사표(死票) 문제를 상징하는 슬로건이다.

정동영 대표는 회의에서 “오늘부터 평화당은 민심 그대로, 연동형 비례대표 관철을 위한 천막당사 투쟁에 돌입한다”며 “2019년도 예산안은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과 동시에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여당의 예산안 처리를 돕지 않겠다는 의미다. 평화당은 선거제도 개혁이 완성될 때까지 천막당사 농성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정당이 국회의사당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한 것은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이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천막당사를 설치한 것을 포함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지난달 14일 국회 본청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경위의 제지를 받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임현동 기자]

지난달 14일 국회 본청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경위의 제지를 받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임현동 기자]

국회의원들뿐 아니라 노조·시민단체의 집회·시위도 연달아 발생했다. 민주노총 산하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단’은 지난달 14일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가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파견법·기간제법 폐기’ 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며 여야 원내대표와의 만남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사무처 직원과 경찰에 막혀 시위는 중단됐다가 2시간여 만에 대치가 풀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달 27일 오후 본관 중앙홀 중앙 계단을 점거하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우리 발달 장애 가족들을 살려달라”는 구호를 20여 분간 외치다가 국회사무처 직원과 경찰에게 밀려났다. 대통령이 약속한 돌봄서비스 예산을 국회가 증액해야 한다며 예산안 심의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한 것이었다. 본관 내부에서까지 시위가 벌어진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연말 국회에 시위가 빈발하는 원인은1차적으로 각종 사회적 쟁점이 국회로 몰리기 때문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연말 정기국회에서 예산안과 쟁점법안이 한꺼번에 처리된다”며 “정국의 초점이 청와대나 행정부가 아니라 국회로 몰리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들은 국회 내 시위를 통해 국회에 자기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 내 불법 집회·시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 시민단체이다 보니 최근 시민단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국회나 정부가 너무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관용을 베풀다가 법치가 흔들려 그것이 결국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위법 행위를 자행하기 때문에 외부 단체의 국회 경내 집회·시위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민주노총 조합원도 지난 4월 한국당의 ‘천막 농성’을 언급하며 현수막을 펼치려고 시도했다. 한 조합원은 “국회의원들은 이 자리에서 천막도 치고 현수막도 펴는데 왜 우린 안 되냐. 국회의원은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도 아니냐”고 외쳤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의원들이 툭하면 경내에서 집회를 여니까 일반 시민들이 국회 경내를 집회 장소라고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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