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함양 상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6월에 접어들자 공기가 벌써 텁텁합니다. 어느 틈에 봄이 슬쩍 지나쳐 버렸나 봅니다. 심지어 사계절 중 봄가을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따뜻함'과 '포근함'은 사라지고 단지 '더움'과 '추움'만 있을 뿐이라고도 합니다. 세월이 시나브로 흘러 그리 느껴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의 탓으로 그리된 것인가요.

따가운 햇살 걸러 주는 숲 그늘에 들었습니다. 함양 상림입니다. 숲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은 1100여 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이곳 태수를 지낸 최치원이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입니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꾼 호안림(護岸林)입니다. 천 년 전의 나무야 이미 스러졌지만, 그 후손들이 이미 수백 년 살이 아름드리로 터를 잡았고 또 갓 뿌리를 내린 그 자손들과 어울려 밀림을 이루었습니다. 무려 천년을 넘게 이어 온 숲인 겝니다.

천년의 숲을 감도는 공기는 시리도록 말갛습니다. 들숨과 날숨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이내 신선해집니다. 새들의 쉼 없는 지저귐도 유난히 맑습니다. 그 뜨겁던 햇살도 숲에선 그저 포근한 한 줌 빛으로 스며듭니다. 천년 동안 자연재해를 막고, 수많은 생명에 정갈한 공기를 나눠 준 상림은 그 자체로 '생명의 숲'인 것입니다.

같은 빛이라도 그 빛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사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노출의 한계를 넘어선 강한 역광 탓에 이미지가 흐려지는 할레이션은 대부분 피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빛이 넘쳐흐르는 듯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빛도 이용하기 나름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