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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인생 새로고침의 시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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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호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벌써 12월이 되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이제 2018년이 30여일 남는 것이다. 한 해를 돌아보니 한 일이 없는 것 같고,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이제 벌써 2019년이라니.

내 삶에 새해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에게 1년의 삶만 주어질 때 #인생 새로고침이 가능해질 것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제 어디서든 ‘남은 연말 잘 마무리하세요!’라는 인사를 듣겠지만, 벌써 내 마음은 2018년을 과감히 버리고 ‘2019년 새해에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모드로 전환 중이다. 바야흐로 인생 새로고침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늘 그렇듯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말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컴퓨터가 아니라서, 강제 종료 후 재부팅도, F5키를 누르고 리셋도 어렵다. 내 인생의 하드를 포맷하고 그간의 삶의 궤적을 다 지워버리고, 어디 가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지만, 명심하자. 인생은 컴퓨터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약 77%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일주일 정도 지킨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 포기한다. 결심은 그저 결심일 뿐,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약 19%의 사람만이 새해 결심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도대체 인생의 새로고침은 왜 어려운 것일까? 인생은 왜 리셋이 안 될까요? 사실은 우리 뇌가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인생을 새로고침 하려면 결국엔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그것의 중추인 뇌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작동해야 하는데, 뇌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우리 뇌는 매 순간 선택을 할 때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져보는 영역과 이익을 추구하는 영역이 작동한다. 그래서 이익이 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른바 ‘목표지향 영역’이 하는 업무가 바로 그런 일이다. ‘내가 지금 이걸 해서 뭘 얻을 수 있지’, 그 목표를 생각한 다음에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매우 머리를 많이 쓰게 만든다. 우리 뇌는 게을러서 되도록 에너지를 덜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만든 기작이 바로 습관이다. 일상적인 상황이 반복되면, 더 나은 목표의 결과값 보다는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려 애쓴다는 것이다. 내가 이걸 선택하면, 어느 정도의 보상이 오는지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보다는 같은 걸 선택하면서 선택의 고민을 줄인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직장 앞 식당에서 “저희 2인분 주세요!!” 하길 원한다. 메뉴판을 보면서 뭘 먹어야 할지 고르기는 싫고, 그냥 알아서 주면 좋겠다는 뜻이다.

우리 뇌는 무게가 전체 몸무게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뭔가를 생각하고 신경 쓴다는 건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되도록 에너지를 적게 쓰려고 애쓴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으로 생활하면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에너지를 적게 쓰는 전략이 보편화된 전략일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청소하고, 가구를 옮기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 분들은 매우 훌륭한 분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기꺼이 에너지를 투자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습관이라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그런데 바로 그 사소한 것 같은 일상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는 것이다.

‘인생 새로고침’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삶에서 새해가 더 이상 없을 때 우리는 새로고침이 가능해진다. 우리에게 단 1년의 삶만 주어진다면, 그 1년의 삶은 완전히 새로고침 된 삶이 될 것이다. 주변에서 ‘새로고침’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담배를 끊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폐암에 걸리는 것이다.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난 사람이 그토록 많이 마시던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등산을 한다.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절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다.

그 절박함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대개 불행한 일이 생겨서 본의 아니게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현명한 사람은 ‘내가 앞으로 1년만 살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절박함을 만들어낸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서 내 삶을 ‘새로고침’ 당하는 삶이 아니라, 경험하지 않고 상상하고 성찰하는 것만으로 그 절박함에 도달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그래서 유용하다.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인생의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 또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내년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 같이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죽을 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습관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현명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인생에 건투를 빕니다. 뇌의 고집을 꺾어주세요.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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