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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카드 수수료 연 8000억 인하 … 을 대 을 갈등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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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위원회는 26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통해 카드 수수료율을 평균 0.6% 인하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개편안을 환영하는 자영업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금융위원회는 26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통해 카드 수수료율을 평균 0.6% 인하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개편안을 환영하는 자영업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여당이 가중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총 8000억원어치의 신용·체크카드 수수료를 깎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근본 대책 없이 카드사와 일반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정, 자영업자 불만에 응급 처방 #최저임금 충격 줄이기엔 역부족 #소비자·카드사에 부담 떠넘겨 #카드사 직원 “구조조정 오나” 흉흉

금융위원회는 26일 당정 협의를 거쳐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율 적용 대상을 연 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카드 수수료율 개편안을 발표했다.

매출액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가맹점은 2.05%에서 1.4%로,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가맹점은 2.21%에서 1.6%로 인하된다. 이 구간에 해당하는 음식점·편의점·수퍼마켓·제과점 등은 연간 150만~5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또 매출액 ‘30억원 초과 100억원 이하’ 가맹점과 ‘100억원 초과 500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율도 각각 2.2%와 2.17%에서 1.9%와 1.95%로 낮아지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매출액 500억원 초과 초대형 가맹점이 높은 협상력 등의 이유로 오히려 더 낮은 수수료율(1.94%)을 적용받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절감되는 수수료가 연간 8000억원이라고 밝혔다.

개편안에 반대하며 당정 협의가 열리는 회의실로 진입하려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관계자들. [임현동 기자]

개편안에 반대하며 당정 협의가 열리는 회의실로 진입하려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관계자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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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발표 후 카드업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거의 매년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바람에 올해 카드사 이익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낮아진 1조7000억원 정도에 그칠 전망”이라며 “수수료 8000억원을 줄이라는 건 사실상 수수료 부문의 수익을 다 포기하고, 손해 보는 장사를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을 대 을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영업자 등의 지원 목적으로 시행되는 이번 정책이 카드사 직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서다. 이미 카드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 얘기로 흉흉하다.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는 이미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현대카드도 이달부터 창사 후 첫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카드사 관계자는 “업계 상위사인 현대카드가 창사 이래 첫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카드사가 줄어든 마진을 연회비 인상이나 부가서비스 축소 등으로 만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이를 용인할 태세다. 금융위는 “과도한 부가서비스 축소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내년 1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안이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와 카드회사의 돈을 빼앗아 자영업자들에게 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문제의 원인은 최저임금을 과다 인상한 것인데 그걸 손보지 않고 손실을 엉뚱한 곳에 전가하는 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윤·정용환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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