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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신발공급의 "본산"|동대문 신발도매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어둠이 아직 짙게 깔려 있는 오전5시30분, 서울 청계천7가 동대문 이스턴 호텔 뒤편에는 큰장이 선다. 이른바 동대문 신발도매시장이다.
서울은 물론 제주·강원 등 전국 각지의 신발상인들이 봉고 차·승용차·타이탄 트럭 등을 끌고 이곳으로 몰려들면 주변도로는 일시에 주차장으로 변한다. 더러는 이스턴 호텔 등에서 묵고 있는 쿠웨이트·이란·멕시코 등지의 외국인 보따리 장수들도 4∼5명씩 떼를 지어 나타난다.
법석거리던 장도 오전7시쯤이면 필요한 만큼 물건을 챙긴 상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 9시부터는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 후 문을 닫는 오후5시까지는 아침 매상의 장부정리와 내일 팔 물건을 진열하면서 알뜰 주부나 여대생들을 상대로 한두 켤레씩 소매장사를 한다.
77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동대문 신발시장은 현재 1천1백여 개의 신발전문가게가 밀집, 전국 최대 규모의 도매시장으로서의 규모를 자랑한다.
서울의 영등포·청량리·천호 동 등의 신발시장은 물론 부산의 자유시장이나 대구의 서문시장 물건도 대부분 이곳에서 나간 물건들이라니 가위 신발시장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하다.
이곳 시장은 크게 4층 건물의 동문시장과 청계천 도로변으로 늘어서 있는 3개 동의 동대문 아파트상가로 나누어져 있다. 동문시장 쪽은 운동화 등 고무·피혁제품이 많으며 아파트상가시장엔 신사·숙녀용 구두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건물 사이사이마다 좁으면 2∼3평, 넓어 봤자 10여 평의 신발가게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신발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지 수가 많다.
하루 판매량은 점포크기에 따라 50∼1백50켤레에 달한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가게 당 하루평균 1백 켤레를 판다고 가정할 때 1천1백 개 상점의 하루판매량은 10만 켤레, 연간으로 치면 3천6백만 켤레에 달한다. 대충 국민한사람이 l년에 한 켤레는 이곳 신발을 신는다고 할 수 있다.
시장 내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기성화 판매업 협동조합의 지상호 사무국장은 이곳 시장의 장점으로서 우선 같은 질의 상품을 일반 소매점보다 평균 20%는 싸게 살수 있다는 점을 든다. 이곳 도매상들의 마진이 3∼5%인 반면 소매상들의 마진은 대략 25%선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이태원·명동·이대 앞 등 시내 주요 신발가게보다는 대략 절반정도 싸 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실제로 시내 소매상점에서 1만원 선에 팔리고 있는 숙녀용 구두가 이곳에서는 4천∼5천 원 이면 살수 있다.
또 일부 양화점에서는 이곳 상품들을 가져가 깔 창에 자기상호만 붙여 파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런 경우 소비자들은 2배 이상 바가지를 쓰는 셈이 된다.
같은 동대문시장 내에서도 값이 더 싼 점포도 있다. 동문시장 3, 4층에 이런 점포가 많은데 이곳은 1, 2층에서 팔다가 남은 재고품이나 유행이 지난 신발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값이 싸 다는 점 외에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동네 부녀 회나 군부대의 체육대회 등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할 필요가 생긴 단체들이 이곳 시장을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동대문시장의 영업은 예전 같지 못하다는 게 상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곳에서 10년째 장사를 해 오고 현재 동문시장 2층 상인회장직도 맡고 있는 원일 고무상사의 박화영씨(50)는『소비자들의 기호가 고급품목으로 쏠리는 것이 그 주된 이유』라고 말한다.
특히 운동화의 경우 중-고등학생은 물론 국민학교 어린이들까지 2만∼3만원대의 고급 외국상표 신발을 즐겨 신는 바람에 타격이 크다는 얘기다. 이곳에도 월드컵·아티스·타이거 등 국내 유명회사 제품이 있긴 하지만 아식스·아디다스·프로스펙스·르까프 등 외국 브랜드나 국내 고급품은 자체 대리점 조직을 가지고 있어 이곳시장에는 전혀 공급이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겨울은 눈도 제대로 오지 않은 이상난동으로 부츠 등 겨울신발 판매가 극히 부진했다고 상인들은 울상을 짓는다.
특히 이곳 도매상들은 규모와 자본금이 매우 영세하기 때문에 조그만 불황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요즘 한 달에 평균 20여 개 점포가 휴업을 하거나 주인이 바뀐다는 것.
상인들은 영업환경이 이같이 악화됨에 따라 서비스개선 등 자구노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예컨대 도매시장의 약점인 사후서비스기능 결여를 보강한다는 차원에서 고객들의 교환 및 반품요구행위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는 것들이 그같은 현상이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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