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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TG삼보 전창진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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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전창진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서소문 호암아트홀 앞 정원에서 농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라고 하자 "사진 찍는 게 농구보다 더 어렵다"고 엄살을 피웠다. 임현동 기자

‘전창진이 누구야?’ 프로농구 2001-02 시즌 종반 원주 TG삼보가 성적부진을 이유로 김동욱 감독을 경질하고 전창진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웠을 때 상당수 농구팬들은 의아해했다. 짧은 머리에 씨름선수 같은 덩치,낮선 이름에 낮선 얼굴. 그러나 3년여가 지난 지금 그를 모르는 팬들은 없다. 원주에선 ‘치악산 호랑이’라고 하면 다 아는 스타다. 경기가 끝나면 “감독님 수고하셨어요”라고 소리치는 ‘오빠부대’도 생겼다.

TG삼보 사령탑에 오른 이후 그가 거둔 전적은 141승 93패다. 그러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 두 번, 준우승 한 번, 정규리그 우승 두 번을 했다. 어느 누구 부럽잖은 성적이다. 하지만 그는 농구선수로는 불운했다.

◆ 유망주였던 비운의 스타=1970년대 중반 한국 중학농구 최강팀이던 용산중의 주력 멤버는 전창진과 유재학(모비스 감독)이었다.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전동숙.작고)의 영향을 받은 전창진은 농구 명문인 상명초 4학년 때 유니폼을 입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였다. 전창진은 용산고로, 유재학은 경복고로 진학하면서 고교농구 판도도 갈렸다.청소년대표.유니버시아드대표(고려대)를 지낸 그는 1985년 삼성전자에 둥지를 튼다. 슈팅 가드로 드라이브인이 특기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만 해도 체중이 75㎏쯤 나가는 날씬한 선수였다"고 전 감독은 말한다. 86년 춘계코리안리그에서 신인상을 타면서 스타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 악몽이 찾아왔다. 중학교 때 다친 왼발목 부상이 재발해 또 한 번 수술대에 오른 것. 한데 수술은 실패였다. 스타의 꿈도 그만 접어야 했다.

유니폼을 벗은 전창진은 이인표 삼성농구 부장의 배려로 팀에 남았다. 선수단 뒷바라지(주무)와 구단 홍보일을 했고, 97년 프로가 출범하면서는 팀의 운영과장이 됐다.

◆ 주무에서 감독으로=98년 그는 지도자로 변신한다. 삼성의 수비코치. 그리고 첫 지도자 보직을 잘 소화한 그에게 이듬해 용산고 선배인 최형길 TG삼보 단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TG삼보의 식구가 됐다. 전창진의 농구는 조직력의 농구다.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포지션별로 선수들이 자기 임무를 다할 때 승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팀은 팀워크를 가장 중시합니다. 훈련의 초점도 거기에 맞춰져 있어요.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아비 스토리도 TG삼보에 적을 두고 나서는 플레이가 확 변했지요."

전 감독은 팀이 원주의 아파트(5가구)에서 함께 숙식하는 것에 대해 "아파트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팀워크가 저절로 잘 맞는다"고 했다. 전 감독은 데뷔 첫 시즌부터 주무 출신답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가며 선수단을 다독였고, 배짱과 뚝심으로 챔프전 우승을 일궈냈다. '용장과 덕장의 장점을 함께 지녔다'가 그에게 가는 평가다.

◆ 코트 바깥에선 수줍음=전 감독은 수줍음이 많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이런 건 나보다 더 인기 있는 우리 선수들이 해야 하는데"라고 쑥스러워 했다. 정규리그에서 우승하고 나서도 자신을 헹가래 치려는 선수들에게 "챔피언이 된 다음 하자"고 극구 사양했다. 매스컴에 나가는 게 어색해서다. 심판에게 불같이 화내며 대드는 모습과는 180도 다른 면모다.

TG삼보의 성공 뒤엔 스태프를 믿고 업무를 분업한 전 감독의 팀 운영방식도 자리한다. 트레이너에겐 선수 체력을, 코칭스태프에는 훈련을 맡겼다. 시시콜콜한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다. 선수를 개인별로 정밀 분석해 특성에 맞게 대우했다. 논리적인 신기성에게는 확실한 근거를 들어 혼을 냈고, 마음씨 착한 김주성은 스타 대접을 해주면서 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는 술을 전혀 못 한다. 대부분 농구인들이 대주가이지만 전 감독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선수들을 분석하며 보낸다.

◆ 기러기 아빠=전창진 감독은 원주 숙소에서 살다시피 한다. 경기도 분당에 집이 있지만 2년 전 아내와 1남 1녀를 캐나다로 보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아이의 유학이었지만 늘 선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도 했다. 매일 한두 번 국제전화를 걸다 보니 전화료가 한 달에 20만~30만원 나온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5월에 캐나다에 다녀 온 뒤 1년 동안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올해엔 팀이 5월 초 싱가포르 초청 국제대회에 출전하게 돼 다음달에나 가족을 만나러 간다.

성백유 기자<carolin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전창진 감독은

▶출생=1963년 5월 20일 서울

▶가족=부인 정인옥(40), 아들 승한(14), 딸 승아(9)

▶체격=1m85㎝.102㎏

▶학교=상명초-용산중.고-고려대(82학번)

▶연봉=2억원(2006년까지 2년 계약)

▶주요 성적=2002~03시즌 챔프전 우승, 2003~04시즌 정규리그 우승, 2004~05 정규 및 챔프전 우승

▶주요 경력=1985년 12월 실업팀 삼성 입단, 87년 은퇴, 88~95년 삼성 주무, 96~97년 프로 삼성 운영과장, 97~99년 삼성 수비코치, 99년 나래(현 TG삼보)코치, 2002년 TG삼보 감독대행, 2003년 TG삼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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