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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품위만 빼고 다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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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신문협회(WAN)총회 참석자들이 각국 언론의 혁신사례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모스크바=이상복 기자

혁신하고 또 혁신하라-.

5일 모스크바에서 개막된 제59차 세계신문협회(WAN) 총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세계에서 온 미디어 업계의 거물들은 한결같이 신문의 혁신을 외치고 있다. 성공 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들의 결론은 명확하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신문이 위기를 겪는 건 사실이나 이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문 콘텐트는 어느 매체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의 의지와 충실한 전략이다.

◆ 지난해 28개 신문이 판형 바꿔=영국의 대표적 진보지인 가디언의 캐럴린 매콜 사장은 6일 "지난 1년간 기사의 품위만 빼고 다 바꿨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컸다. 가디언은 지난해 9월 판형을 대판(현재 중앙일보 크기)에서 베를리너판(대판과 타블로이드의 중간)으로 바꿨다. 일요판 신문 옵저버도 마찬가지다. 특히 ▶읽기 쉽고▶생생한 스토리가 있으며▶드라마틱한 사진과 그래픽을 확충하는 식으로 컨셉트도 바꿨다. 효과는 컸다. 옵서버의 경우 부수가 44만 부에서 50만 부로 늘었다. 가디언은 젊은 층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특별섹션('G2''필름뮤직')까지 내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판형 변화의 바람은 곳곳에서 거세다. 월 스트리트 저널도 아시아와 유럽판을 콤팩트판(타블로이드)으로 전환했다. WAN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8개 신문이 크기를 줄였다. 2001년부터 계산하면 85개에 달한다.

◆ "창의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라"=주제 발표자들은 한결같이 "신문 상품 못지않게 경영 마인드를 바꿔라"고 주문했다. 독일 최대 신문 그룹인 악셀 스프링어의 마티아스 되프너 회장은 '신문의 미래, 미래의 신문'이란 발표에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화'와 '디지털화'라는 화두를 잡고 있는 자신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그룹은 2년 전 폴란드에서 대중지 팩트와 고급지 지에니크를 창간했다. 국제적 시각을 강조한 이들 신문은 현재 부수가 50만 부와 25만 부로 각각 대중지.진보지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되프너 회장은 "저널리즘의 본질은 변형되지 않지만 누가 도전적인 발상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인디펜던트 그룹의 빈센트 크롤리 사장은 신문의 혁신엔 편집국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뉴스 생산 시스템을 유연하게 가져가자는 것이다. 실제 복수 편집국장제를 도입하고(뉴욕 타임스.아사히 신문), 여러 매체의 편집국을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미국 마이애미 헤럴드지는 아예 5명의 편집국장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 섹션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으며, 1면은 함께 조율해 만든다.

◆ 차별화된 웹사이트가 관건=선진국의 경우 인터넷 독자와 광고 수익은 급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전략이 신문산업의 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뉴욕 타임스가 가장 앞서가는 신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4월 이용자들이 손쉽게 뉴스에 접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대폭 개편했다. 세 가지가 주요 컨셉트다. 알짜 정보, 명품 정보, 개인 정보다. 예를 들어 올 여름 독자별 맞춤형 서비스라고 볼 수 있는 '마이타임스'를 내보낸다.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 즉 기사와 사진.멀티미디어 등을 한 페이지에 저장하도록 하는, 사실상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다.

영국 권위지 가디언의 매콜 사장은 '가디언 유비쿼터스'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가디언은 "인터넷 접속자의 절반 이상이 비유럽 국가"라며 "언제 어디서나 가디언을 볼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 독자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오스트리아의 베랄베르거 메디엔하우스. WAN에서 소개된 이 신문의 성공 사례는 신문, 특히 지역 신문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이 신문은 독자들의 욕구를 철저히 조사했다. 그 결과 기존의 믿음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지방 독자들은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에 따라 베랄베르거는 사람들의 결혼과 출산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 35만 명 중 신문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10만 명. 인터넷은 토론과 포럼의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이곳에선 인터넷 접속도, 광고주 확보도 단연 베랄베르거가 1등이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블러프톤이란 무료 신문 역시 시민저널리즘을 통해 자리를 굳힌 경우다. 이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는 사진과 행사는 물론 요리법까지 교환되는 '정보의 장'이다. 독자들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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