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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추억] 연극계 대부 하늘로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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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극단을 만들고 연출도, 연기도, 제작자도 이렇다 할 수련기간 없이 쉽게 무대 위에 서게 됐지만 그것이 곧 속물근성으로 물들게 했다. 모든 예술이 적어도 10년 공부를 기본으로 삼는다면 결국 연극인도 그 10년 공부를 이겨내야 한다.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다른 길을 택해야 옳다."(수필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 중에서)

차범석(車凡錫) 선생은 해맑은 심성을 지녔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부당한 것과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인생에 승자는 없다. 다만 도전만이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엇보다 그에게 연극은 온몸 불살라 내던져야 할 것이었다. 어수룩한 자세와 진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준엄했다.

그는 전후문학의 1세대로서 50여 년 동안 전통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희곡 작품을 발표해 왔다.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하는 데 공헌한 대표적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작가 차범석을 모르는 사람들도 TV 드라마 '전원일기'(초창기 1년간 집필)의 작가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4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고인은 3개월 전 위암이 전이돼 통원치료를 해오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2003년 팔순을 맞았을 땐 잔치 대신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정도로 치열한 작가였다. 2년간 써온 신작 3편을 포함한 여덟 번째 희곡집 '옥단어!'를 냈다.

평소 "불편한 게 오히려 좋은 것"이라며 '삼무(三無)주의'생활을 고집해 왔다. 자가용.신용카드.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전후작가로 분류될 만한 극작가이면서도 전쟁이라는 주제에 고착하지 않았다. 철저한 현실에 바탕을 둔 다양한 주제를 통해 현대적 서민 심리를 추구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유치진.이해랑의 뒤를 잇는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 작가로 꼽혔다.

그는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귀향'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전쟁의 상처로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린 '불모지'(57년)와 이념의 허구성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산불'(62년)은 6.25의 비극을 부각시키고 반전의식을 일깨운 전후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산불은 특히 내년 신시뮤지컬컴퍼니에 의해 대형 창작 뮤지컬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활동 외에 56년 김경옥.최창봉.오사량 등과 '제작극회'를 창단해 소극장 운동을 주도했다. MBC 창립에 참여해 방송극 창작에도 관여했다. 63년에는 김유성.임희재 등과 극단 '산하'를 창단하고 대표(1963~83년)로 활동해 한국의 현대극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 '사형인'(56년), '말괄량이 길들이기'(64년), '세일즈맨의 죽음'(75년), '도미부인'(84년), '고려애사'(90년) 등의 구성공연을 맡아 극연출가로도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옥순씨와 딸 혜영.혜진씨, 아들 순주(백병원 의사).순규(동남해운㈜ 사장)씨 등 2남2녀가 있다. 장례 절차는 연극계 원로들과 논의를 거쳐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빈소는 삼성의료원 15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장지는 전남 목포 선산이다. 02-3410-6915.

최민우 기자

◆수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1970년).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81년).대한민국예술원상(82년).동랑연극상(84년).대한민국문학상(91년).이해랑연극상(93년).서울시문화상(97년).삼성문학상(2000년)

◆주요 저서=▶창작희곡집: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61년).대리인(69년).환상여행(75년).학이여 사랑일레라(82년).식민지의 아침(91년).통곡의 땅(2000년) ▶연극이론서:동시대의 연극인식(87년) ▶수필집: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84년).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94년) ▶자서전:떠도는 산하(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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