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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꽃나무로 세대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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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전 유성온천의 이팝나무 가로수. 매년 5월 중순이면 하얀 꽃이 활짝 피어 새로운 관광명물이 되고 있다. 최준호 기자

대전 유성온천 일대 거리는 매년 5월 중순이면 흐드러지게 핀 하얀 이팝나무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지난달 12일에는 유성문화원 주관으로 이팝꽃축제가 열려 관광객 500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유성구는 1985년 이후 지금까지 꽃가루 공해 등이 있는 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뽑아내고 이팝나무 6372그루를 새로 심었다.

60년 충남 천안시의 시 나무로 지정된 능수버들은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천안시 전체 가로수의 70% 차지할 정도로 흔했으나 현재는 5%밖에 안 된다. 꽃가루 공해가 심한 데다 늘어진 나뭇가지가 운전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자주 일으킨다는 이유로 천안시가 벚나무와 다른 꽃나무로 바꿨기 때문이다.

가로수의 수종(樹種)이 확 달라지고 있다. 흙먼지 나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버즘나무.은행나무 등은 사라지는 반면 꽃나무를 비롯해 단풍나무 등 겉모습이 화려한 수종이 크게 늘고 있다.

◆ '대수술' 중인 가로수=6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6개 시.도가 새로 심은 가로수 19만 그루(50여 종) 중 가장 많은 수종은 벚나무(30%)였다. 이어 이팝나무(12%).단풍나무(8%).배롱나무(6%).느티나무(5%) 순이었다.

반면 벚나무 다음으로 많은 은행나무는 지난해 새로 심은 비율이 6위로 밀려났다. 은행나무는 토양 속의 중금속 제거 효율이 높아 환경정화수로 적합하나 열매 냄새가 고약한 데다 낙엽이 많아 가로수로서 인기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버즘나무와 느티나무도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해 강원(100그루)과 충남(807그루)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시.도에서는 버즘나무를 전혀 심지 않았다.

◆ "꽃나무로 지역 알리자"=일선 시.군이 새로 심는 가로수를 꽃나무 위주로 바꾸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차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보행자를 위한 녹음수(綠陰樹.그늘을 만들 목적으로 심는 나무)로 적합한 은행나무.버즘나무 등의 중요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도로변에 건물이 급증, 잎이 크거나 많은 나무는 건물이나 운전자들의 시야를 가려 민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지역 홍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꽃나무를 선호하는 것도 주요인이다. 여기에는 벚꽃나무 가로수를 활용, 매년 4월 초 군항제를 열어 100여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경남 진해시가 대표적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하지만 가로수 수종 변경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있다. 산림청 산림휴양정책과 고연섭 사무관은 "가로수는 도로 경관을 개선하고 대기 오염을 감소시켜 주며 도시의 무더위를 완화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며 "그런데도 시.군들이 '보여 주는 것'에 집착해 꽃나무 위주로만 가로수를 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 가로수의 역사=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도로 위에 서 있는 나무 형태를 나타낸 것이 있고, 기원전(BC) 5세기께 중국에서는 '열수(列樹)'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고종 32년(1895) 내무아문(內務衙門.현재의 행정자치부)에서 길 양쪽에 나무를 심도록 전국 8도(道)에 공문을 보낸 게 시초다. 이후 '신작로'라는 새 길이 뚫리면서 당시 가로수에 적합한 나무로 알려진 버즘나무.양버들.미루나무 등을 외국에서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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