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평가 난기류 걷힐까|노-김대중 회담「숨겨 논 카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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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독회담은 여-야 개별 영수회담으로는 마지막으로 여-야간 중간평가 협상의 극적 절충의 돌파구를 찾는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지금까지 입장으로 보면 양측의 의견접근은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실시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중간평가를 연기하거나 보류하는 방향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여권의 태도다.
따라서 노-김 회담에서 절충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5공 청산작업을 부분적으로 추진하는 선에서 야권이 중간평가를 노 대통령의 공약이행차원으로 인정, 불신임투쟁을 벌이지 않고 방관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중간평가를 아예 실시하지 않는 방법뿐이다.
노 대통령이 중간평가 조기실시방침을 철회하기도 어렵지만 불신임공동투쟁을 합의했던 야당 측이 중간평가 「방관」또는 불실시 쪽으로 급선회하는 것도 그럴듯한 명분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야 모두 자칫 이전투구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신임투표·극한대결을 내심으로는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 총재가 이날 회담에서 그럴 만한 제의를 할 것인지, 노 대통령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기대 섞인 관측무성>
특히 김대중 총재로서는『요식 행위라면 만날 필요 없다』는 일부 당내 저지를 뿌리치고 임하는 회담인 만큼 뭔가 카드를 쥐고 청와대로 간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과 기대 섞인 관측들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 총재가 9일의 확대간부회의에서 『여러 해가 지난 후 되돌아봐도 그 시점에서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언명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한 고위측근은『김 총재는 이번 회담에서 중간평가실시 연기의 야권권고에도 불구하고 노정부가 끝내 강행할 경우에 정정당당히 발표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말하게 될 것』이라
고 말해 기본적으로 5공 청산과 민주화조치의 명분과 원칙에 충실할 방침임을 전제하면서도『그러나 결코 일시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비장한 각오도 하고 있다』고 강조,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총재는 이날 회담에서 우선 자신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왔고 3김 회담에서도 합의에 이른 중간평가조기실시·반대 론을 다시 강력히 개진할 것이 분명하다.
김 총재는 「중간평가 조기실시는 여야는 물론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극좌·극우 등 극단세력의 입지만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빚게 되고 설사 여권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5공 청산·민주화조치 없이 중간평가를 강행할 경우· 문제는 여전히 남으며 오히려 정치권 전체가 불신을 받아 정치가 양 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5공 청산 없이 중간평가를 강행하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예측불허의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5공 청산의 기본조건에 있어 김 총재는 △전·최씨 증언문제는 방문증언으로 절충할 의향이 있으나 △정호용·이원조·이희성·허문도·안무혁씨 등의 처리문제를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의 한 관계자는『여당이 정·이씨 문제만 나오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했는데 핵심인사 처리문제가 협상의 중요관건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김 총재가 중간평가조기실시 반대 론을 뛰어 넘어 여권 일각에서 은근히 기대하는 대로 『중간평가는 할 필요가 없다』는 파격선언을 과연 하고 나오겠느냐는 것이다.
한 고위측근은 이와 관련 『이번 국회에서 야당 공동 안으로, 개정된 지자제법과 노동관계법 등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지자제를 되도록 빨리 실시할 것을 보장하면 이지자제선거로 중간평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힐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자제에 의한 중간평가 또는「중간평가 자동소멸방안」을 개진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화조치의 최종적 완결장치인 지자제는 어차피 실시해야 하고 더구나 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이 지자제의 조기실시를 통해 민주화를 이루고 그로써 중간평가를 대체하자』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겠다는 것이다.

<"진전 있겠나" 딴전>
노-김 단독회담에 대해 민정정 측은 내심 큰 기대를 걸면서도 겉으론『별 진전이 있겠느냐』고 딴전.
민정당의 김윤환 총무·이종찬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자들은 청와대회담을 앞두고 평민당 간부들과 집중 접촉해 왔는데 한쪽으로 기대를 걸면서도 5공 인사처리 요구에 난색.
평민당측이 가장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정호용 의원의 공직사퇴로 알려졌는데 당 차원에서는 한때 평민당측 정 웅 의원 등도 책임지는 선에서 절충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청와대 쪽 분위기를 타진한 후부터는 「절대부가」로 선회.
한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사나 군 쪽의 견해에 대해 충분한 인식이 이뤄졌으며 야당 측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다 면서 야당 측이 굳이 중간평가를 우회하고자 한다면 그 문제는 끄집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야당도 양해했음을 시사.
한 소식통은 우리로서는 중간평가를 실시한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지만 만약 평민당이 중간평가 부 요의 명분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공화당 등과 상의할 수 있다면서 김영삼 총재가 끝까지 일전부사로 나온다면 민주당은 배제하고 3당간에 협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신축성을 보였다.

<재야의견도 들어>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동교동에서 기자들과 만나『정치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번 회담에 임하는 심경을 피력한 뒤 5공 청산·핵심인사처리문제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갔다 와서 얘기하자』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이번 회담에 앞서 9일 확대간부회의 후 문동환 부총재·당3역 등을 차례로 만나 의견을 들었다.
김 총재는 청와대를 출발하기 전 『4자 회담의 개최여부가 이번 회담의 성과를 재는 잣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그럴 수 있다』고 즉 답하면서 『회담결과가 잘되면 4자 회담을 통해 마무리 지어지기를 바라고 마지막 결단을 할게 있으면 모여서 같이해, 합심해서 문제를 푸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이번 회담에서 설사 내부적인 성과가 있다 할지라도 곧바로「단독발표」하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을 생각임을 내비쳤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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