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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문제 심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 대학 식품영양학 교수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된 지 사흘 뒤 장안의 설렁탕 집은 썰렁하니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업주들은 울상을 지었다. 작년 말 나온 이 연구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내 대중 음식점의 설렁탕·육개장·비빔밥 등 대중 음식물에 수은함량이 허용기준치를 2배 초과하고 있고 세끼식사를 통해 섭취되는 1인당 평균 수은 섭취 량이 WHO 허용량의 5·6배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장안의 대중음식점이 파리를 날리고 셀러리맨의 점심시간을 우울하게 만든 이 연구발표가 있은 지 한참 지나서야 보사부는 문제의 음식물이 허용기준치를 넘지 않고 있고 이상이 없는 것이라고 어물쩍 넘어갔다.
문제의 연구보고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치더라도 86년, 88년 두 해에 걸쳐 조사한 양식 있는 연구자의 보고서라는 점에서 보사 당국은 좀 더 과학적이고 지속적인 사후 연구가 뒤따랐어야 마땅했다.
식품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형식적 일제 단속이나 벌이고 발뺌에 급급 한다면 불량식품의 추방이란 언제나 헛도는 공론밖에 될 것 없다.
3월 한달 동안 보사부는 또 전국에 걸쳐 불량식품을 일제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으레 있는 연중행사이고 단속을 위한 단속이라고 체념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다.
백화점에서 파는 냉동식품에 대장균이 우글거리고, 미국에서 사들인 옥수수에 발암 유독 물질이 묻어 들어오며, 청소년 기호품인 쥐치에선 다량의 중금속이 검출되는가 하면 오렌지 음료엔 기름이 뜨고 콜라 병 속엔 이물질이 떠 있다. 가짜 참기름 사건이 해마다 일어나고 농약을 타 콩나물을 속성 재배했던 사건의 기억은 아직도 채 사라지지 않았다.
TV의 건강강좌가 아무리 인기를 끌고 건강식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자 식품 자체가 유독하다면 무슨 소용인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행위일 수밖에 없는 불량식품의 제조· 판매행위를 일시적 단속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식품의 재배·제조·판매과정은 기간이 너무 길고 유통과정이 매우 복잡해 1년에 월 1회 이상의 합동단속만으로는 원천적 봉쇄가 될 수 없다. 지속적인 단속을 걸 수 있는 상설기구가 있어야 한다.
불량식품은 다른 상품과는 달리 소비자에게 경제적 피해를 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명을 위협한다. 따라서 불량식품단속은 불량상품 규제와는 차원이 마땅히 달라야 한다.
미국의 상품 안전 법은 한 상품에 위해 가능성이 있을 경우 즉각적인 제조금지와 제품수거를 명령할 수 있다. 우리의 현행법으로는 불량식품에 의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아도 제조업자의 고의과실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미국의 제조 물 책임 법에 따르면 신체적 피해가 발견될 경우 곧바로 제조업자에게 보상책임을 묻게끔 되어 있다. 식품의 경우 보다 엄격한 이러한 제도적 조처가 뒤따라야만 한다.
그 다음, 과학적 조사에 근거한 예방 적 대책이 정기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한 연구자의 발표가 있은 다음에야 끌려가며 사후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광범위한 식료품 샘플조사가 일상적으로 계속되어야 하고 그 연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국민 식생활의 파수꾼이 우리 곁에 언제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소비자보호원을 중심으로 해서 10여 개 민간소비자단체가 발을 맞춘다면 그 효과는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식품범죄는 마약단속과 같은 차원에서 지속적이고도 강력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다시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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