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간「거리」만 확인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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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지하철 노사분규 해결을 위한 6일 밤 서울시장과 노조 대표들간의 면담은 비록 서로간의「거리」를 확인하는데 그쳤으나「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에 한 가닥 가능성을 보였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 측에서 고 건 시장·윤백영 부시장·교통국장 등 관계국장 4명을 포함 6명, 노조 측에선 정윤광 위원장과 간부 6명이 참석했다. 또 공사 측 업무내용 설명을 위해 공사실무자 2명이 잠시 배석했다.
오후 7시30분부터 4시간동안 진행된 양측의 평행선 대화를 통해 이번 분규의 원인과 배경, 쟁점을 정리해 본다.
▲고 시장=지하에서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신 여러분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합의각서는 노·사 모두가 전면 이행돼야 한다는 근본원칙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구체적인 집행순서나 방법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노·사간 대화로 풀 수 있는 것 아니냐. 공사 측에도 대화로 풀어 달라고 했으나 대화가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시장의 입장에서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시민들도 불안해하고 있고 대화로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다. 시민의 대리인이라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조정하려 한다. 우선 경위와 의견을 말해 달라.
▲정 노조위원장=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노·사간에 합의각서가 체결됐으나 공사 측은 그때마다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의 합의각서도 우리가 많이 양보한 것인데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해 놓고 또 지키지 않았다. 10월의 파업 철회이후 노조 집행부가 취약해 보였던지 공사 측은 그 이후 조합원분열·와해공세를 계속해 왔다.
또 대화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위원장 취임 전에 상견례도 있었으며 노조간부 4명과 대화도 했었다. 노조를 속이고 왜곡·기만하는 사장은 물러나야 한다.
▲고 시장=지난해 10월의 합의각서 이행문제가 쟁점이다. 공사 측도 10개항 모두 실시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3항(근무형태 변경 및 보수제도개선·지하철 근무수당의 기본급 화), 4항(지하철 근무수당 기본급 화 시행시기), 8항(호봉조정 항)은 다 연관돼 있어 병행 실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총무부장=8항의 호봉조정은 당시 구체적인 표까지 만들었고 4항도 시행 일이 89년1월로 돼 있다. 그런데도 공사 측이 구실을 붙여 자꾸 늦추고 있다.
▲노조선전 부장=3항은 정원조정문제도 있고 당장 실시가 곤란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행 가능한 것부터 시행하라는 것이다.
▲노조차량 지부장=지하철 근무수당의 기본급 화 시행에 갖가지 이유를 붙이는 공사와는 신뢰회복이 불가능하다.
▲고 시장=사소한 것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 같다. 시장은 감독자 입장이지 결정권자는 아니므로 구체적인 것은 결정을 못하지만 우선 대강의 기본원칙에 대해 논의해 보자. 각서이행절차와 방향 같은 것들부터 해보자.
▲시 교통국장=공사로 서울시에서 분리된 뒤 시 기능이 축소돼 시는 예산·정관 승인 권 밖에 없다.
▲고 시장=가끔 지하철을 탄다. 오늘도 혜화역에서 탔다. 그런데 TV를 보니까「근조 고건」이라고 써 붙여 놓았더군. (웃음)
노조원들이 무임승차하라고 광고하는 것도 그렇고, 빨리 철회하라.
▲추 위원장=경찰·시청직원이 왜 나와 막느냐. 조합원을 한 명이라도 처벌할 경우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시장책임이다. (9시45분부터 20분 동안 노조 측 요구로 정회, 10시5분 재개 후 공사 노무과장 등 공사 측 실무자 2명 배석).
▲시 공보관=능률적인 대화를 위해 실질적 문제로 들어가자.
▲노무과장=3, 4, 8항은 동시에 이뤄져야 할 사항이다.
▲고 시장=따지고 보면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 지하철 근무수당 기본급화의 경우 물론 구체적 협의 없이 시행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다른 수당에 영향을 주지 않느냐.
▲노무과장=지하철 수당의 기본급 화부터 시행하면 그 자체로 4·4%의 임금인상 효과가 난다.
▲정 위원장=서울시가 걱정하는 다른 각종수당은 못 받는 사람이 66%가 넘는다. 다만 해당자에게는 7∼8% 인상효과가 난다.
▲고 시장=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우선 실무자 차원에서 의견조정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자
▲당 위원장=이미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라는 것뿐인데 이것에도 협상이 필요한가.
▲고 시장=실천의지를 내가 가질 수 있게 해 달라. 내일 오후 5시에 또 만나자. 그리고 그때는 문서로 요구사항을 제시해 달라. <정리=제정갑·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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