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민의 발」을 잡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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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지하철 노사분규가 무임승차운행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재연된 가운데 노조측이 7, 8 일 파업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어서 1천만 서울시민의 발이 또 한 차례 묶일 위기를 맞고있다.
「파업투표는 결코 부결된 적이 없었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매일같이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또 한번 고통을 겪어야할 판이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지하철이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지도 모르는 상황이 여간 못 마땅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잊을만할 때쯤이면 합의문 조항해석이라는 묵은 불씨가 되살아나 파업까지 들먹이는 지겨운 힘 겨루기가 끊임없이 반복되고있다는 사실이다.
두 달이 멀다하고 8개월 사이에 다섯 번이나 터져 나와 시민들을 볼모로 잡는 지하철 노사분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시민들은 『차라리 1주일쯤 아예 파업하고 나머지 기간이라도 불안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짜증 섞인 넋두리 속에 『공사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직접운영 하라』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노사간의 끝없는 불신, 1년 동안 노조위원장이 세 번씩이나 바뀌는 노조내부의 갈등 등 지하철 분규의 원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으나 시민들이 원하는 해결책은 「대화를 통한 협상」한가지로 모아진다. 법대로 맞서다 결말이 안나 파업을 벌인다면 모르지만 공익 사업체에서 조차 냉각기간 중에 집단으로 사무실에 쳐들어가 결국 시민의 재산인 집기를 부수는 등의 불법이 판을 친다면 법이 설 자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공사나 노조는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보다는 요란한 구호를 앞세운 채 전의를 북 돋우고 그러면서 여론을 자기 평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팽팽히 맞선 이 평행선의 끝은 결국 지하철이 멈춰서고 서울전체가 마비에 빠지는, 노사 양측은 물론 아무도 바라지 않는 악몽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사양측이 여론재판에 승패를· 맡기기에 앞서 현재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자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회 각 분야가 책임은 짐짓 외면하고 자기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권리주장 목청만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금 ,양측이 모두 자기편 에서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 여론 은 결국 잔꾀보다는 책임 있는 행동의 편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노조의 입장에선 공사가 사용주의겠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공사도 노조도 모두가 시민들에 고용된 입장이다. 피고용자끼리의 다툼에 주인인 시민의 권익이 외면 당하는 것은 오래 방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협상으로 시민의 불안과 불만을 풀기 바란다. 이철호(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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