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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로드]'탄산가스 잡아라' 김치 제조업체들, 발효가스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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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종가집 김치. 대상은 198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가스흡수제를 개발했다. 이후 대상은 포장김치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1위를 지키고 있다. [사진 대상]

대상의 종가집 김치. 대상은 198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가스흡수제를 개발했다. 이후 대상은 포장김치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1위를 지키고 있다. [사진 대상]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냉장고 속 김치통. 뚜껑을 열면 “퍽” 소리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몰려나온다. 김치통을 부풀게 한 물질의 정체는 이산화탄소다. 잘 익은 포기김치나 동치미 국물 사이로 떠오르는 기포 역시 이산화탄소다. 김치 속 유산균이 발효를 촉진하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톡 쏘는 김치 특유의 감칠맛을 살린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김치는 포장해서 판매하기 까다로운 식품 중 하나로 꼽힌다. 발효와 숙성을 거치며 포장재가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포장김치 역사는 발효 가스와의 '전쟁'이다. 김치 제조업체들이 발효가스를 잡기 위해 소리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첫 포장김치가 시장에서 나온 건 1989년이다. 그해 대상은 이산화탄소를 붙잡을 수 있는 가스 흡수제를 김치 포장 안에 넣는 기술 개발에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이를 통해 발효 중에도 부풀지 않는 포장지를 개발했다. 오랫동안 마트에 진열해도 포장지 변형이 없는 '사먹는 김치'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대상은 가스흡수제 생산기술을 특허로 등록했다. 가스 흡수제의 주원료는 수산화칼슘이다. 대상 관계자는 “수산화칼슘 1g당 200cc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cc는 마트에서 팔리는 작은 종이팩에 든 우유 정도 분량이다. 대상 관계자는 "특허 낸 가스 흡수제 기술은 몇 번의 개량 작업을 거쳐 종가집 김치 포장지 내부에 부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선보인 김장독 모양의 김치 용기. 특수 필터를 적용해 발효 중에 생산되는 이산화탄소를 조절한다.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이 지난해 선보인 김장독 모양의 김치 용기. 특수 필터를 적용해 발효 중에 생산되는 이산화탄소를 조절한다. [사진 CJ제일제당]

지난해 포장김치 시장 규모는 1조3301억원. 가스 흡수제 개발을 통해 포장김치 시장을 선점한 대상은 30년 가까이 이 시장에서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링크 아즈텍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포장김치 시장 점유율은 대상(46.3%). CJ제일제당(30.7%), 동원 (1.9%) 순으로 조사됐다.

 CJ제일제당인 2007년 선보인 하선정 통김치. 가스흡수제를 없애 원활한 가스 순환이 가능하게 했다.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인 2007년 선보인 하선정 통김치. 가스흡수제를 없애 원활한 가스 순환이 가능하게 했다. [사진 CJ제일제당]

포장김치 시장은 대형 마트로 소비 시장이 재편되면서 날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다른 식품 기업들도 포장김치 시장에 뛰어든다. CJ제일제당은 2006년 하선정종합식품을 인수하고 포장김치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도 대상처럼 김치를 보관할 수 있는 용기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CJ제일제당은 기술 개발을 통해 원형 위주의 김치 용기 포장에서 벗어난 사각 용기를 2007년 선보였다. 특허받은 누름판을 사용해 김치 양념이 더욱 깊게 배면서 곰팡이 발생을 방지한 게 특징이다. 김장독 원리를 응용해 가스흡수제 없이 발효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CJ제일제당은 누름판을 활용한 하선정 통김치를 발판으로 2008년 가정용 김치 시장에서 처음으로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2016년 새로운 브랜드 ‘비비고 김치’를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이산화탄소를 제어하는 김칫독 모양의 비비고 김치 용기를 선보였다. 톡쏘는 맛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이산화탄소를 유지하는 특수 필터와 산소 유입을 방지하는 밸브를 하나로 결합한 게 특징이다. 이병국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책임연구원은 “적절한 발효 가스를 유지해 김치 본래의 맛을 살리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세계김치연구소가 지난해 만든 김치 포장용기. 용기가 김치냄새를 흡수해 발효 중에도 김치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는다.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세계김치연구소가 지난해 만든 김치 포장용기. 용기가 김치냄새를 흡수해 발효 중에도 김치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는다.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포장김치 용기는 맛은 살리고 김치 냄새는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지난해 김치 냄새를 잡을 수 있는 알칼리성 천연물질을 활용한 포장김치 용기를 개발했다. 이산화탄소 등으로 김치 용기가 팽창해도 김치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 기술이다. 유승란 세계김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천연물질을 활용한 탈취 성분으로 용기를 만들어 김치 외에도 다른 발효식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성사의 1984년 김치냉장고 광고. 국내 첫 김치냉장고다. [사진 LG전자]

금성사의 1984년 김치냉장고 광고. 국내 첫 김치냉장고다. [사진 LG전자]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김치냉장고는 김치 보관 기술의 확장판이다. 국내 첫 김치냉장고는 금성사(현 LG전자)가 1984년 출시한 제품이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무렵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거주자가 많아 김치냉장고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김치냉장고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 무렵이다. 만도기계가 김치의 옛말인 '딤채'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하면서부터다. 김치냉장고는 매년 120만대 정도가 팔리는 인기 가전제품이다. 김치냉장고는 숙성 온도(5도~7도)와 보관 온도(영하 2도~0도)를 선택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3~4개월 동안 김치를 보관할 수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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