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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이자제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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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자제한법이 고리(高利) 사금융으로 인한 서민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 법무부의 이자제한법 부활 방침에 대해 취지와 달리 음성 사채시장만 더 키우는 등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이보다는 서민용 소액대출 전담 금융회사를 키우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명동 길거리에 사채 안내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김태성 기자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노리는 고리대금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따라서 연 40%를 최고 이자율로 못 박는 이자제한법을 부활해 사채업자의 고리대금이 설 곳을 없애야 한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

그러나 이자제한법이 고리대금의 횡포를 뿌리뽑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이 많다. 이자율을 강제로 낮추면 제도권 금융회사의 돈 공급이 줄어 음성적인 고리대금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서민에게 무보증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하는 '대안 금융회사' 활성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 '약탈 수준'인 고리대금=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고리대출 피해를 본 이들을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연 196%에 이르는 이자를 뜯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고양시의 이모씨는 "긴급 사업자금 4000만원이 필요해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업자를 찾았다"며 "선이자 500만원을 뺀 3500만원을 받은 지 한 달만에 4000만원을 돌려줘 연 140%의 고리를 물었다"고 하소연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하에서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사채업자다. 이들은 감시를 피해 쉽게 불법을 저지른다. 업계에 따르면 대부업 등록업체가 1만5000여 개인데 비해 무등록업체는 2만5000~3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채업자들은 폭언.폭행 등도 일삼는다. 무등록업자인 권모(35)씨는 최근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낸 뒤 여성만을 골라 82명에게 총 1억8000여만원을 빌려주고 최고 연 1300%에 이르는 고리를 뜯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부모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400만원을 빌린 뒤 이자를 갚지 못한 A씨(27)를 성폭행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사채업자는 연 66% 이상의 이자를 못 받게 한 대부업법도 교묘히 피해간다. A크레디트란 회사는 100만원을 빌려주고 매달 원금 10만원과 이자 5만5000원씩을 갚게 했다. 언뜻 보면 한도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금을 매달 갚기 때문에 이자율은 둘째 달에 연 73%, 셋째 달엔 82% 등으로 높아진다. 이 같은 사금융 시장은 40조원 규모로 400만 명의 서민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이자제한법, 효과 있을까=법무부는 기존 대부업법만으로는 사금융시장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김재훈 검사는 "대부업법은 대출을 업으로 하는 '등록업자와 개인 간'의 거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등록업자에 대해선 '개인 대 개인 간'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이자제한법이 별로도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 검사는 "대부업법은 과거 조직폭력배 같은 사채업자의 등록을 유도하기 위한 행정법이었다"며 "근본적으로 서민 보호를 위해 이자를 제한하는 법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일본도 사채업 이자를 최고 연 29%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주(州)가 각각 이자 상한선을 연 12%와 6%로 정하는 등 선진국에도 이자제한법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개정된 대부업법에 따라 현재 등록을 했건 안 했건 사금융업자들은 모두 연 66%를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다"며 "이자제한법은 동네 사람끼리 돈 주고받는 것을 규제하는 수준의 효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자제한법을 만들 필요 없이 대부업법 시행령만 고쳐도 이자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현성수 수석전문위원은 "돈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에서 이자율을 낮추면 업자들이 자금 공급을 줄여 급전이 필요한 서민은 결과적으로 이보다 더 높은 금리를 물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대안은 없나=사금융 수요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신용이 낮고 담보가 없는 서민에겐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무담보 무보증으로 서민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같은 대안 금융회사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국내에선 삼성.국민은행 등의 기부금으로 연 4%에 대출해 주는 사회연대은행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정찬우 연구위원은 "기부금.휴면예금.정부자금 등으로 자금조달 창구를 다양화하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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