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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오세훈 당선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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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귀하도 놀랐을 겁니다. 아무리 이 정권이 밉기로서니 이처럼 낙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민심 참으로 무섭지요? 공자는 '순천자(順天者)는 존(存)이요,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면 살아남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것이지요. 하늘의 그물은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새는 법이 없습니다. 하늘이란 바로 민심입니다.

선거는 바람과 동정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지요. 박근혜 대표의 피습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한나라당 바람이 분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귀하의 깨끗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부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귀하나 한나라당이 좋아서 이런 몰표가 나왔다고 오해하진 마십시오. 사실상 이번 선거는 선거가 아니었습니다. 활화산 같은 분노의 폭발이었습니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민란이요, 민중봉기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독선과 아집, 무능으로 대변되는 이 정권에 대한 탄핵이나 레드 카드쯤 되겠지요. 이 서늘한 민심의 칼날은 언제라도 귀하나 한나라당을 향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참신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잊으십시오. 이미지는 허상일 뿐입니다. 시장 일은 이미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철인삼종 경기를 하던 열정으로 시정에 매진하십시오.

몇 가지 당부를 드립니다. 우선 더 공부하십시오. 후보들의 방송토론을 지켜본 시민들 가운데 "어쩌면 저렇게 현황 파악들이 안 돼 있나"라며 혀를 차는 분들이 있더군요. 귀하도 예외가 아닙니다. 공약을 살펴봤습니다. 강북에 50개의 뉴타운을 개발하고, 강북상권을 활성화하며, 대기오염을 도쿄 수준으로 낮춰 잃어버린 수명 3년을 되돌려 드리겠다는 내용이 눈에 띄더군요. 그대로만 된다면 4년 뒤 서울은 세계 일류도시로 변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뉴타운 50개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시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습니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파악하십시오.

무리하지 마십시오. 이번 선거부터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유권자들이 공약 실천 여부를 감시합니다. 그래도 100% 이행은 무리지요.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하십시오. 선거용으론 그럴싸했지만 불가능한 공약은 과감히 포기하십시오. 서울은 이제 개발보다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도 잊지 마십시오.

이명박 시장을 배우십시오. 누가 뭐래도 그는 성공한 시장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의 최대 치적인 청계천 복원 사업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요. 상인들의 반대에다 교통체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집요한 설득에 대통령도 결국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반대가 있고 인기가 없더라도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실천하십시오.

서울 시민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도로에서 옵니다. 버스전용차로 등으로 교통체증이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교통시스템을 컴퓨터화하고 불법주차만 제대로 단속해도 교통체증은 많이 개선됩니다. 오토바이 때문에 인도를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좌판은 또 왜 이리 많습니까.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인데 봐줘야 한다고 말하면 서울은 결코 일류도시가 안 됩니다. 시민들 실생활에 와 닿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 가십시오. 그러면 4년 뒤 시민들은 설령 귀하가 공약을 다 완수하지 못해도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유재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