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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젊은이들 팝송 즐기며 거리서 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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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 오전에 노동사 박물관을 둘러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동구권의 한 나라에 머무르고있다는 사실이 별로 실감나질 않았을 거야. 택시를 탈 때마다 듣게 되는 서구식 팝송, 거리에서 스스럼없이 포옹하는 젊은이들 (동독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 거침없이 반소 감정을 드러내는 시민들, 호사스런 공연장 분위기며 공산주의 이념과 전혀 관계없는 공연 내용, 길가의 신문 판매대에 진열된 오락 잡지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에 정취를 더해주는 거리의 악사들…. 헝가리는 동구권에서 가장 개방된 나라라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진한 서구 냄새가 구석구석에 배어있구나.』
헝가리에 가거든 꼭 그림 엽서를 부쳐 달라던 친구에게 적어보낸 이 사연처럼,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뜻밖의 여유를 즐겼다.

<친절한 호텔 직원>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서울 올림픽은 정말 근사하더라』거나 『경제기적을 이뤘다니 참 부럽다』면서 뭐든 친절히 도와주던 시민들의 호의 탓일까. 지난 1월25일부터 29일까지 부다페스트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지레 걱정했던 「동구의 긴장」을 까맣게 잊은 채 마냥 느긋한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호프만스탈」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리하르트·슈트라우스」의 대표적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더 할 나위 없이 친절한 호텔 직원 덕분이었다. 헝가리영자 일간지의 공연 안내란을 보고 그 입장권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당장 국립 오페라 극장으로 달려가서 1등석 입장권을 사다주는 것이 아닌가.
유머 넘치는 사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어가는 성악가들의 아리아와 오케스트라의 신나는 연주를 듣다가 문득 『바로 이 무대에서 공산주의적 색채를 띤 작품이 공연된다면 과연 이 공연장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질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옥타비안」 백작이면서 시녀 「마리안넬」로 변장하고 나타나기도 하는 메조소프라노 「보코르·주타」씨의 익살스런 연기와 노래는 가위 일품이었다. 우연히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코르」씨 부친의 친구였는데, 휴식 시간마다 나를 환히 불 밝혀진 아름다운 로비로 안내해 「보코르」씨의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권하며 『한국에서도 서양식 오페라를 공연하느냐』고 묻는 등 그지없는 호의와 관심을 보였다.

<민속 음악에 치중>
또 『장미의 기사』란 18세기 무렵 빈에서 약혼식을 올릴 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신부의 집으로 전하는 사람이라는 등 헝가리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오페라의 내용을 좀더 이해하면서 즐길 수 있게 하려고 애썼다.
「옥타비안」 백작이 사랑하는 처녀 「조피」와 부르는 행복한 2중창으로 이 3막 오페라의 마지막을 장식하자 청중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보코르」씨의 가족들이 무대 뒤로 가서 『먼 나라 한국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고 나를 소개하자 33세의 이 오페라 가수는 『한국인들도 음악을 매우 좋아하느냐』면서 『나도 서울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은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말러」 등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직접 그 무대에 섰다는 부다페스트 시립 비가도 연주홀을 돌아본 뒤 리스트 음악원으로 향했다. 세계적 작곡가 「프란츠·리스트」와 「벨라·바르토크」, 지휘자 「유진·올먼디」와 「게오르규·솔티」 등을 배출한 음악의 나라 헝가리에서는 음악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다.
리스트 음악원의 「로바슈·요로그」 사무총장은 손수 끓여낸 차를 대접하면서 『헝가리에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 비교적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민족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욱 훌륭한 음악가들이 배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 음악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민속 음악을 매우 중시하는 점으로 3세 어린이들을 돌보는 유아원에서부터 자주 민속 음악을 들으며 놀도록 해 민속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 세계와 친숙해지도록 한다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현대의 서구식 팝 음악에만 탐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음악 교육의 큰 과제로 고전 음악의 이론과 역사를 이해시키고 감수성을 길러주고자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바르토크라는 라디오 채널에서는 고전 음악만 방송하는 등 매스미디어와 연주회를 통해 좀더 많이 시민들이 가급적 자주 민속·고전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로바슈」 사무총장은 『이래저래 「바르토크」와 「코다이」는 헝가리 「음악 교육의 필수로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입학할 수 있는 5년 과정의 리스트 음악원은 매우 인기가 높아 매년 정원 (헝가리 학생 4백50명·외국 학생 90명) 보다 4배가 넘는 학생들이 지원할 정도. 또 이 음악원은 초·중등학교 음악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음악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는데 매년 6백명의 음악 교사들이 3년 과정의 이 재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한다,
「헝가리에서 음악 교육이 유독 강조되는 이유에 대해 「로바슈」 사무총장은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민속 음악은 생활 감정 표현의 중요 수단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음악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예술 분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말 외래 음악의 영향이 점점 커지자 민속 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은 「바르토크」「코다이」 등의 음악가들이 순수 민속 음악을 발굴·보전·발전시키는 작업에 발벗고 나섰다며 「로바슈」 사무총장은 이 같은 민족 음악가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대학생 농성 예사>
그러나 대부분의 지배층 관리들은 민속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민족 음악가들의 작업에 몹시 비협조적이었고,「리스트」도 1875년에 이 음악원을 설립하기 위해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따라서 1879년까지는 「리스트」의 자택에서 음악 교육을 실시했으며 1907년에야 리스트 음악원이 현재의 건물에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1879∼1907년에 리스트 음악원으로 쓰였다는 건물은 현재의 음악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보로슈마티가에 있는데 「리스트」가 사용하던 피아노와 책상 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리스트 기념 박물관 겸 리스트 음악연구소·실내악 연주홀로 쓰이고 있다.
부다페스트시내 한복판의 보행자 전용도로 바치가 한켠에 자리잡은 카페 보로슈마티 쿠크라츠다. 한 때 헝가리의 문화 예술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는 19세기 풍의 우아한 이 카페에서 부다페스트 대학에 다니는 남녀 대학생을 만났다.
『국민학교 때부터 필수적으로 배워야하는 소련어는 아무 쓸모 없는 두통거리일 뿐이므로 차라리 영어·불어·독어 등 그밖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한결 유용하다』는가 하면, 『56년에는 헝가리, 6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80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식으로 12년마다 한나라씩 무자비하게 짓밟는 소련이 오는 92년에는 어느 나라를 희생양으로 선택하겠느냐』는 등 노골적으로 반소 감정을 드러냈다.
또 얼마 전에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면서 『헝가리가 학문적 발전을 이루고 현재의 심각한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면 좀더 과감하게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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