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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70만명 학살···캄보디아 '킬링필드' 전범 종신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캄보디아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키우 삼판(83) 전 국가주석(왼쪽)과 누온 체아(88) 전 공산당 부서기장. [로이터=연합뉴스]

캄보디아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키우 삼판(83) 전 국가주석(왼쪽)과 누온 체아(88) 전 공산당 부서기장. [로이터=연합뉴스]

최소 170만명이 학살된 캄보디아 ‘킬링필드’ 과정에서 대규모 인종청소가 자행됐음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붕괴한 지 40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16일(현지시간) 크메르 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범재판소(ECCC)는 크메르루주 정권 2인자인 누온 체아(92)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87) 전 국가주석에 각각 법정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1975년~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캄보디아 내 베트남 소수 민족에 저지른 대량학살과 반인류 범죄 등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울러 당시 정권 1인자 폴 포트의 오른팔로 불렸던 2인자 체아에게는 같은 기간 이슬람 소수민족인 참족을 상대로한 대량학살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인종청소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범, 폴 포트. [사진 위키피디아]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범, 폴 포트. [사진 위키피디아]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전 당시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지칭하는 단어다.

1975년 론놀 장군의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폴 포트는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회실험을 감행한다.

수도 프놈펜의 주민 200만~250만명은 이주 통보를 받은 후 3일 만에 모두 쫓겨나 시골농장에서 집단생활해야 했고, 화폐 사용 금지, 은행 강제 폐업 등 자본주의의 상징은 철저히 금지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외국어를 쓰는 사람이나 안경 쓴 사람, 손이 부드러운 사람까지 모두 ‘교육 받은 사람’이나 ‘부르주아’로 간주하고, 잔혹한 고문 끝에 처형했다.

1975년~1979년까지 실시된 이른바 ‘킬링필드’ 학살로 최소 170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됐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뚜얼 슬렝 제노사이드 박물관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유해. [EPA=연합뉴스]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뚜얼 슬렝 제노사이드 박물관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유해. [EPA=연합뉴스]

이후 크메르루주는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반군과 베트남군에 의해 축출됐지만, 폴 포트는 밀림에 몸을 숨긴 채 20여년 간 저항하다 1998년 사망했다.

ECCC는 그가 죽고 8년 후인 2006년 출범한다.

여전히 생존해 있는 체아와 삼판은 2014년 양민 강제 이주와 론놀 전 정권의 군인 처형 등 반인류와 관련해 유죄판결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2016년 확정됐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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