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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의 문학사 다시 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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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제 치하에서 검열을 피하여 비밀리에 발간된 국내 지하 문학과 해외, 특히 중국 등지의 독립 투쟁 과정에서 발표된 시가를 민족 주체적 시각에서 다룬 연구가 나와 주목을 끈다.
김동수씨 (원광대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는 최근 간행된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일제 침략기 민족 시가연』 (인문당간)에서 기존의 일제 치하 문학사가 한결같이 총독부의 검열을 받아 발표되었던 검열 문학에만 치중, 식민지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구한말에서 광복까지의 의병들의 투쟁과 상해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 지사들의 시가를 구국 지향이라는 주체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있다.
독립신문 (1896∼1899년)에는 총 32회에 걸쳐 31편의 시가가 발표됐는데 「분골하고 쇄신토록 충군하고 애국하세」 「입신양명 하량이면 충군애국 위쥬로다」 등에서 보이듯 아직 봉건적 잔재가 가시지 않고 외세의 침략 의도가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을사조약 이후 국권 상실이 노골화해 가는 상황 속에서 발간된 대한 매일 신보에 실린 시가는 풍자와 우의를 통해 항일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역사가나 독립 운동가로서만이 아니라 문학론과 작품을 통해 민족 문학을 정립하려 했던 단재 신채호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그의 역사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비아인 일제를 극복했을 때 진정한 민족 주체성인 아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시속에 구체화시키고 있다.
임시 정부의 공보지인 상해판 독립신문에는 70여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당시 통제를 받던 국내의 검열 문학과는 달리 식민지 시대의 애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몽고사막 내부는 차디찬 바람/사정없이 살점을 떼 갈 듯 한데/삼림 속에 눈 깔고 누워 잘 때에/끓는 피가 더욱히 뜨거워진다」에서 볼 수 있듯 나라 잃은 처절한 삶을 형상화하면서 독립을 이루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 일제의 검열로 발표되지 못했던 심훈의 시에는 일제의 침탈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황폐화한 시대에 있어서 남아 있는 것은 알몸뿐이며 이 알몸을 희생,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속죄양 의식」이 관류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소생할 것을 굳게 믿는다/마지막으로 붉은 정성을 다하여/산 제물로 우리의 몸을 너에게 바칠 뿐이다!」에서와 같이 그의 시들은 대속 행위를 통해 미래에의 희망, 즉 광복을 확신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구국 지향의 해외 문학·지하 문학, 『상록수』의 소설가로만 알려졌던 심훈의 시와 함께 널리 알려진 항일 민족 시인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등의 시가를 주체적으로 다룬 이 연구에서 김씨는 한민족이 광복을 위해 싸웠다는 솔직하고 바른 문학의 모습을 밝혀야 서구 문예 사조나 식민 의식을 탈피한 정통 문학사가 정립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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